IT/바이오

여성 자영업자 겨냥 스토킹, 스마트치안 기술이 막을까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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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던 날, 여성 혼자 운영하는 케이크 가게 앞에 낯선 남성이 다가와 출입문을 거세게 흔드는 장면이 폐쇄회로TV에 포착되면서, 골목 상권 여성 자영업자를 겨냥한 스토킹형 범죄에 대한 불안이 다시 커지고 있다. 같은 여성이 과거에도 유사 사건으로 신고까지 했던 사실이 알려지자, 업계와 보안 기술 기업은 인공지능 기반 영상 분석과 비상 앱, 스마트 출입통제 기술을 결합한 ‘생활 밀착형 스마트치안’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 방범 카메라를 넘어, 위협 행동을 인지해 자동 경보를 울리고 주변 상권과 경찰로 즉시 알리는 플랫폼 경쟁이 골목상권 보안 시장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공개된 사건은 전통적인 방범 인프라의 한계를 보여준다. CCTV는 사건의 경위를 기록하지만, 실제 위협 상황이 발생하는 순간에는 예방 기능이 약하고 대응도 사람의 눈과 신고에 의존한다. 특히 혼자 가게를 지키는 여성 사장과 같은 취약 계층의 경우, 위협 행동이 시작되는 초기에 신속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가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이 지점에서 AI 기반 영상 분석과 실시간 알림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치안 플랫폼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AI CCTV로 불리는 지능형 영상분석 기술은 카메라에 촬영되는 화면을 인공지능 모델이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상 행동을 탐지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출입문을 반복적으로 강하게 흔들거나, 폐점한 가게 앞에서 장시간 배회하는 패턴을 학습 데이터로 정의해 두면, 과거 단순 녹화에 머물던 CCTV와 달리 위협 징후를 즉시 감지할 수 있다. 최근 상용 솔루션 가운데는 인물의 신체 자세, 동선, 머무는 시간까지 분석해 ‘도난 시도’, ‘침입 시도’, ‘스토킹 의심 행동’ 등으로 자동 분류해주는 기능을 제공하는 제품도 등장했다.

 

특히 이번과 같은 사례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사건 전 단계’에서의 조기 감지다. AI 모델이 출입문 파손 시도나 공격적 제스처를 탐지하면, 점주 스마트폰과 인근 상인, 보안업체, 상황에 따라 경찰의 112 통합 플랫폼에까지 동시에 푸시 알림을 보내도록 연동할 수 있다. 기존 방범 시스템이 사건 후 증거 확보에 머물렀다면, 지능형 시스템은 ‘실시간 대응’으로 기능이 확장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행동 인식 정확도가 90퍼센트 수준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단순 오탐에 그쳤던 초기 제품 대비 실사용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평가한다.

 

여성 자영업자 안전을 위해서는 영상 분석뿐 아니라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발전해 온 웨어러블 센서, 비상 호출 장치와의 융합도 주목받는다. 스마트워치나 반지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에 심박수, 스트레스 반응을 감지하는 센서를 탑재하고, 사용자가 특정 제스처를 취하면 자동으로 비상신호를 발신하는 기술은 이미 헬스케어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를 매장 보안 시스템과 연동하면, 점주가 직접 휴대전화를 꺼내 신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손목을 두 번 비트는 동작 등으로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하다.

 

골목 상권 등 소규모 리테일 환경을 겨냥한 스마트 출입통제 솔루션도 성장세다. 생체인증과 전자식 도어락을 결합해 영업 중에도 잠금 상태를 기본값으로 두고, 방문 고객에게만 일회용 출입 코드나 모바일 키를 발급해 여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AI CCTV를 연동하면, 출입 요청자의 얼굴과 행동 패턴을 동시에 분석해 ‘비정상 접근’으로 분류할 경우 문 자체가 열리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순 자물쇠나 기계식 도어락에 의존해 온 소상공인 점포에서 디지털 전환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성과 청소년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위치 기반 비상 플랫폼이 상용화돼 있다. 북미와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사용자가 위협을 느끼면 스마트폰에서 ‘위장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GPS 위치와 현장 음성이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경찰과 지정 보호자에게 동시에 전송되는 서비스가 활용 중이다. 이 과정에서 단말기 내 가속도 센서와 마이크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실제 위협 상황인지, 단순 실수인지 필터링하는 기술도 도입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앱들이 등장했지만, 소상공인 점포 환경에 특화된 솔루션은 여전히 초기 단계로 평가된다.

 

문제는 개인정보 보호와 감시 사회 우려다. AI CCTV와 위치기반 비상 플랫폼이 확산되면, 영상과 위치 정보, 생체 정보 등 민감 데이터가 대량으로 수집·분석된다. 관련 법과 가이드라인은 방범과 사생활 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실제로 국내 개인정보 보호 규제는 촬영 목적, 저장 기간, 제3자 제공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얼굴 인식 등 고위험 기술은 별도 동의와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흐름이다. 유럽연합 AI 규제에서도 공공장소 실시간 얼굴 인식은 최고 위험군에 해당해 강한 제한을 두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데이터 최소 수집 원칙과 비식별화 기술을 전제로 한 ‘로컬 분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매장 내부 소형 서버나 엣지 디바이스에서 영상 분석을 수행하고, 위험 여부만 암호화된 신호로 외부에 보내는 구조를 통해, 실제 얼굴이나 음성 데이터가 클라우드에 장기간 저장되지 않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또 이상 징후 탐지 모델을 개발할 때도, 특정 성별이나 연령, 인종을 기준으로 편향된 판단이 나오지 않도록 학습 데이터를 검증하는 ‘AI 윤리 검증’ 절차가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보안업계는 여성 1인 매장과 야간 영업 점포를 타깃으로 한 패키지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AI CCTV, 스마트 도어락, 비상 웨어러블, 위치기반 앱을 하나의 요금제와 플랫폼으로 제공해, 설치와 유지관리 부담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스마트 안심거리, 여성 안심 상점 등 공공 사업과 결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지자체가 일부 비용을 보조하고, 수집된 이상 징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 지역을 지도화해 치안 인력을 배치하는 등 데이터 기반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기술 확산 속도에 비해 법과 제도, 현장 인식은 여전히 더디다는 평가가 많다. 스토킹 방지법과 위치추적 규제, 개인정보 보호법이 각각 다른 관할과 목적을 갖고 있어, 스마트치안 플랫폼에 대한 통합 가이드라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성 자영업자 단체들은 “벌금 수준의 사후 처벌만으로는 재범을 막기 어렵다”며, 기술을 활용한 사전 보호 조치와 접근 금지 명령의 실제 이행을 연동하는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IT·바이오 융합 기술이 일상 공간의 안전을 지키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실제 골목 상권의 여성 점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로 안착할 수 있을지에 시선이 쏠린다. 결국 첨단 보안 기술의 속도만큼, 스토킹과 성범죄를 둘러싼 사회 인식과 제도 개편이 함께 따라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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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치안#aicctv#디지털헬스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