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명 이상, 충분히 더"…윤석열 지시마다 커진 의대 증원, 감사원 "근거 부정확" 지적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하는 핵심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면서다. 특히 증원 목표가 보건복지부의 첫 제안보다 단계적으로 크게 불어난 배경에 윤 전 대통령의 반복된 증원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은 27일 의대 증원 추진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2022년부터 2024년 초까지 이어진 보건복지부와 대통령실 간 논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의 발언과 대통령실의 추가 지시가 더해질 때마다 의대 증원 규모는 애초 연 500명에서 연 1천명, 다시 연 2천명으로 확대됐다.

의대 증원 논의의 출발점은 2022년 8월 19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였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근무 중 뇌출혈 사망 사건을 거론하며 원인을 물었고, 보건복지부는 "의사 수 절대 부족이 원인이므로 의대 증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필요한 만큼 충분히 늘려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감사원은 전했다.
약 10개월 뒤인 2023년 6월 2일, 조규홍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에게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500명씩 6년간 총 3천명을 늘리는 방안을 보고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1천명 이상은 늘려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고, 이후 정부 안은 즉각 상향 조정 과정에 들어갔다.
조 장관은 같은 해 10월 6일 다시 2025∼2027년 각각 1천명씩, 2028년에는 2천명을 증원해 4년간 총 5천명을 늘리는 방안을 들고 대통령을 찾았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의 반응은 여기서도 더 강경했다. 그는 "충분히 더 늘려야 한다"고 재차 지시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청와대 참모진은 의사 수급 균형을 2035년에 맞추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조 장관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서울대학교 연구 결과를 토대로 부족 의사 규모를 다시 추계했다. 이 과정에서 이관섭 당시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미래 수요뿐 아니라 현재 부족한 의사 수도 포함하라"고 요구해 추계치가 1만명에서 1만5천명으로 늘어났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정책 조율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선호는 점차 명확해졌다. 이후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관섭 실장은 조 장관에게 "2천명 일괄 증원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의료계 반발과 연착륙 필요성을 이유로 단계적 증원을 고수하려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2023년 12월 27일 조 장관은 윤 전 대통령에게 두 가지 안을 최종 보고했다. 하나는 2025∼2026년 2년간 매년 900명씩 늘린 뒤 2027∼2029년에는 매년 2천명씩 증원해 총 7천800명을 확충하는 단계적 증원안이었다. 다른 하나는 2025∼2029년 매년 2천명씩 총 1만명을 늘리는 일괄 증원안이었다.
조 장관은 의료계 반발이 예상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단계적 증원안을 건의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의 판단은 달랐다. 그는 "어차피 의사단체의 반발은 있을 것이고, 2027년 추가 증원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다시 초래될 것"이라며 단계적 증원에 명시적으로 반대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대통령은 일괄 증원안을 전제로 "의사단체의 반발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더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조 장관은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 전략회의에서 절충안을 제시했다. 2025년에만 300명을 줄여 1천700명을 증원하고, 이후 지역 의대 신설 시기에 맞춰 300명을 추가 증원하자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관섭 비서실장은 다시 "2천명 일괄 증원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고, 단계적 조정 시도는 좌초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조 장관은 대통령과 대통령실 모두 단계적 증원에 반대한다고 판단해 연 2천명 일괄 증원안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했고, 위원회 심의를 거친 뒤 2024년 2월 정부 공식 방안으로 발표했다. 여기서부터 2024년 내내 이어진 의사협회 집단행동과 진료 중단 사태, 이른바 의료 대란의 불씨가 본격 점화됐다는 평가가 감사 결과에 담겼다.
감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의대 증원 목표 산정 과정에 대해 "정책 결정의 출발점이 된 의사 부족 추계가 부정확했고, 그 이후에도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요구에 따라 증원 규모가 반복적으로 상향 조정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통령 지시가 갖는 정책 결정 권한 자체는 헌법상 권한 범위에 속한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후폭풍이 예상된다. 야당은 이미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을 두고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해 온 만큼, 감사원 발표를 근거로 대통령실 책임론을 한층 강하게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당시 의료 인력 확충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었다는 점과 연구기관 추계를 토대로 증원 규모를 조정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방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반응도 엇갈릴 전망이다. 의사단체는 정책 결정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과 전문성 훼손을 문제 삼으며 재논의를 요구할 공산이 크고, 환자단체와 지방자치단체 등은 지방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한 증원 필요성을 다시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국회는 향후 의대 정원 조정 논의를 다시 테이블에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관련 상임위는 감사원 결과를 토대로 청문과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고, 정부는 의료계와의 협의를 거쳐 향후 증원 속도와 규모를 재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관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