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의료정책 악법 규정”…의협, 강경투쟁 선언에 의료계 긴장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검체검사 위탁제도 개편, 의사의 성분명 처방 의무화,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 허용 등 굵직한 보건의료정책 개혁안이 연이어 제시되며 의료계 집단 반발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진단 및 처방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하려는 이번 정책들은, IT와 바이오 기반의 의료 생태계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한다. 업계는 이번 ‘3대 의료정책’ 논란을 의료 직역, 환자 권리, 의료계-정부 간 신뢰의 분기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개원의협의회 등 전국 의사단체는 16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열어, 최근 추진 중인 의료법 개정 3대 정책을 ‘의료악법’으로 규정하고 전면 폐기를 요구했다. 의협은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 ▲성분명 처방 의무화 ▲한의사 엑스레이 사용 허용안이 환자 안전·의료 체계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의협 내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는 올해 들어 긴급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정부가 협의 없이 정책을 일방 강행할 경우 전면 총력 투쟁에 돌입할 방침을 거듭 밝혔다.

의협이 강하게 반발하는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제약사의 상품명 대신 성분명으로만 약을 처방하고, 약사가 동일 성분 내에서 제품을 자유롭게 조제하는 방식이다. 이 정책은 유연한 약제 선택, 제네릭 시장 활성화, 비용절감 등의 장점이 있으나 의료계는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유지된 처방-조제 분리 원칙이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특히 “성분명 처방 미이행 시 형사처벌” 조항까지 포함될 경우, 의료계의 전문성 및 환자 안전권 침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약물 상호작용, 환자별 다의약제 병용 등 임상 현장의 위험성을 감안하면, 기술적·의학적 책임 소재 불분명 문제도 대두된다.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 및 방사선 발생 장치 안전관리 책임자 지정 추진에 대해서도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다. 의협은 면허제도의 근본, 학문 권한의 경계를 허무는 정책으로 보고 있으며, 오진·치료지연 가능성과 의료과오 시 책임 소재 논란도 제기된다. 정부는 일차의료기관(병·의원) 관리료 일부 폐지 등 각종 검체검사 위탁 구조 개선이 효율화 취지임을 내세우고 있으나, 일선 의료인은 인력·비용 부담 급증, 중소의료기관 위기 등 부작용을 우려한다.
반면 유럽,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제네릭 확산·디지털 진단기기 사용 확대 등 의료 공급 체계의 확장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각국은 임상 데이터 축적, 책임성 확보, 면허·전문영역 구분 등 규제 설계를 통해 의료 안정성도 병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성분명 처방, 의료기기 업무 확대 등 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산업계와 의료계, 정부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정책의 실효성과 의료 생태계의 질적 전환 중 어느 쪽을 더 우선시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꼽힌다. 의료계는 정부·국회가 환자 중심의 안전장치, 전문가적 판단과 소통 메커니즘을 보장하지 않은 채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1차의료 기반이 훼손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의가 단순한 진료방식 변경을 넘어 IT·바이오 융합시대의 의료 규제 패러다임 전환과 직결된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 의료정책 전문가는 “제도 변화가 의사·환자·플랫폼 산업 삼자간 신뢰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이슈가 의료 데이터 관리, 진단 자동화, 신약 유통 등 폭넓은 분야로 파급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의료현장의 혁신과 안전, 산업적 성장과 윤리적 기준 간 균형이 앞으로도 한국 의료정책의 주요 화두로 남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