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 정면 고수한 채 국제무대 복귀 선언”…김정은, ‘글로벌 플레이어’ 행보 본격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둘러싼 첨예한 논란 속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상징적으로 선언하면서 외교적 파장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경축행사에 비서방권 주요 정상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이 기회를 활용해 글로벌 외교 행보를 본격화하려는 모습이다.
평양에서 10일 개최된 노동당 창건 80주년 행사에는 중국과 러시아, 베트남, 라오스, 인도네시아, 니카라과 등 비서방권 고위 인사들이 방북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라오스 통룬 시술릿 국가주석, 베트남 또 럼 공산당 서기장, 중국 리창 국무원 총리 등과 연쇄 회담을 가졌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별도로 접견했다. 2013년 이후 12년 만에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이 북한을 찾으면서 국제적 위상 변화를 보여줬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던 열병식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리창 총리, 베트남 럼 서기장과 함께 주석단에 나란히 서며 중국·러시아 등과의 전략적 연대를 과시했다. 북한은 이 자리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을 공개하며 미국을 향한 군사적 메시지의 수위를 대폭 높였다. 러시아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은 “북한의 국방력 강화 조치를 지지한다”는 점을 공식 공동성명에 담아 사실상 북한 핵에 대한 묵시적 용인을 표명했다. 베트남 역시 국방부 장관을 대동하고 방북해 다양한 분야의 협력 합의문을 체결하는 등 각국과의 연쇄 협력 분위기가 감지됐다.
정치권의 시선은 김정은 위원장의 전례 없는 ‘자신감’에 주목한다. 그는 9일 전야제 연설에서 “우리 공화국의 국제적 권위는 날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밝혔고, 열병식 당일에도 “강위력한 혁명무력으로 정의와 평화를 수호하는 데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용원 노동당 비서 역시 ‘친선적 벗들의 진실한 성원에 큰 고무를 받고 있다’며 외국 정상들에게 사의를 표하고, ‘자주와 평화를 위한 글로벌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 등 서방국들은 북한의 공식 핵보유 및 주변국과의 군사 협력 강화에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서방권 국가들은 미국과의 갈등 속에서 북한에 대한 지지 또는 협력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어 향후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당분간 내부 결속에 주력할 전망이다. 기존의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하고 내년 초로 예상되는 9차 당대회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이 제안한 ‘조건 없는 대화’에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대화의 실마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러시아와 새로운 전략적 틀을 구축하며 대미 견제에 나설 것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9차 당대회 준비와 함께 미국의 새 국방전략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APEC 회의를 계기로 중국과 미국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논의할지도 관심사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권은 이번 노동당 창건 80주년 행사를 계기로 북한의 국제적 위상 변화와 한반도 정세의 격랑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