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분해능 열영상 현미경…KBSI, 반도체 발열 진단 새 눈 연다
전자소자 내부의 열 흐름을 나노미터 수준에서 직접 들여다보는 국산 초고분해능 열영상 현미경이 나왔다. 미세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발열 관리가 성능과 수율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비접촉 방식으로 동작 중인 소자의 실제 열분포를 포착하는 장비를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업계에서는 나노급 발열 이미징이 첨단 반도체 공정 검증과 신뢰성 평가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을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연구장비개발부 장기수 박사 연구팀이 주사 광학 탐침 열반사 현미경 SPTRM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27일 밝혔다. SPTRM은 동작 중인 선폭 100나노미터급 전자소자의 열분포를 직접 이미징할 수 있는 초고분해능 열영상 시스템으로, 기존 적외선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던 미세 발열 구조를 분해능 한계 아래에서 포착했다.

SPTRM은 소자 표면에 닿지 않고 빛의 반사율 변화를 이용해 온도를 측정하는 열반사 현미경 기법을 채택했다. 소자 표면에 레이저를 조사한 뒤, 온도 변화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반사 강도를 감지해 열분포를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50나노미터 개구부를 가진 광섬유 탐침을 시료 표면에 극도로 근접시키는 구조를 구현해, 광학 회절로 인해 흐려지던 이미지를 나노 스케일에서 선명하게 확보했다.
특히 전단력 피드백 메커니즘을 이용한 튜닝 포크 기반 위치 제어를 적용해 탐침과 시료 사이 거리를 정밀하게 유지했다. 이로써 광섬유 개구부에서 나오는 빛의 회절을 최소화하고, 이론적 회절 한계보다 훨씬 작은 100나노미터 선폭 패턴을 식별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기존 적외선 현미경이 수 마이크로미터, 즉 수천 나노미터 해상도에 머물렀던 점을 고려하면 열분해능을 한 자리 수 이상 개선한 셈이다.
연구팀은 또 하나의 핵심 설계로, 동일한 단일 광섬유를 통해 빛을 조사하고 다시 수광하는 구조를 도입했다. 일반적으로 나노 광학 탐침 방식에서는 조사계와 검출계를 별도 경로로 구성해 정렬 오차와 손실이 발생하기 쉬운데, KBSI 연구진은 이 구조를 단일 경로로 통합해 광학 정렬에 따른 변수를 크게 줄였다. 그 결과 신호 대 잡음비가 개선돼 나노미터급 발열체의 실제 열분포를 안정적으로 영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SPTRM의 또 다른 강점은 비접촉 측정이다. 탐침이 시료에 직접 닿지 않아 미세 패턴이나 취약 구조를 물리적으로 건드리지 않으며, 측정으로 인한 구조 변형이나 손상 위험을 줄였다. 동시에 온도 신호를 전기적으로 직접 읽는 방식이 아니라, 온도 변화에 따른 반사율 차이를 광학적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소자에 흐르는 전류나 인가전압이 측정신호에 간섭을 주는 문제도 억제했다. 전기적 노이즈를 원천 차단해 측정 신뢰도를 높인 셈이다.
실험 결과는 기존 기술과의 격차를 명확히 보여준다. 동일 조건에서 적외선 카메라 기반 열영상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선폭 100나노미터 박막 발열체의 열분포가 SPTRM에서는 뚜렷한 패턴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통해 나노미터급 발열 구조를 실제 동작 환경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을 시연했다.
응용 분야는 첨단 반도체 전반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시료 재질에 따라 반사율 변화가 극대화되는 최적 파장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어, AI 반도체, 전력반도체, 3차원 적층 소자, 고집적 메모리 소자 등 다양한 칩 구조의 발열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공정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공정 결함이 집중되는 핫스팟 위치를 나노 스케일에서 정확히 찾아낼 수 있어, 열로 인한 성능 저하와 조기 고장 원인을 조기에 진단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이미 발열 관리와 열 설계 최적화를 차세대 경쟁 요소로 꼽고 있다. 선폭이 줄고 3차원 적층이 일반화되면서, 칩 내부 특정 구역에 열이 몰리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시뮬레이션과 제한적인 마이크로미터급 측정에 의존해 왔지만, KBSI의 이번 기술로 실제 동작 중인 나노 구조의 발열 패턴을 직접 검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제도와 표준 측면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반도체 신뢰성 평가와 공정 검증에서 열분포 측정은 필수 항목이지만, 나노 스케일에서 동작 중 소자를 비접촉으로 측정할 수 있는 상용 장비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SPTRM과 같은 초고분해능 열영상 기술이 국제 표준 측정법으로 자리 잡을 경우, 장비 인증과 공정 검증 규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문경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는 복잡한 미세 소자의 열 문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 점을 강조했다. 정 박사는 이 기술이 발열 원인을 조기에 발견해 소자의 고장 및 성능 감소 위험을 낮추고, 나아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 결과는 측정과 계측장비 분야 국제 학술지인 IEEE Transactions on Instrumentation and Measurement에 지난달 게재됐다. 논문 게재로 기술의 학술적 타당성을 인정받은 만큼, 후속으로 장비 상용화와 산업 현장 도입 논의도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를 총괄한 장기수 박사는 소자에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않고 열분포를 이미징하는 만큼 안전성과 신뢰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장 박사는 반도체 공정 불량 탐지와 전자기기 신뢰성 평가 등에서 SPTRM이 널리 활용되기를 기대한다며, 나노급 열영상 기술이 첨단 전자산업의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양산 공정과 제품 개발 라인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지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