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소외론 어떻게 달래나"…더불어민주당, 1인1표제 두고 보완책 논란 재점화
1인1표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과 영남 소외론이 맞물리며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격랑에 들어섰다. 당 지도부가 당원주권주의 확대를 내세우는 가운데, 대의원제 사실상 폐지와 영남권 당원 배제 우려가 확산되면서 보완책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이 본격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1월 27일 오후 당 중앙당에서 대의원 역할 재정립을 위한 태스크포스 1차 회의를 열고, 당헌·당규 개정으로 추진 중인 1인1표제 보완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1인1표제는 대의원과 권리당원 표의 가치를 동일하게 맞추는 내용으로, 당의 주요 의사 결정에서 대의원 별도 가중치를 없애는 효과를 낳는다.

이에 따라 그간 전국 조직과 집단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당내 의사 결정 구조에 관여해온 대의원 제도는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특히 당내 절대소수인 영남권 당원들의 목소리가 당 운영 과정에서 더 옅어질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겹치면서, 영남 소외론이 당 안팎의 민감한 쟁점으로 부상했다.
TF 단장은 조승래 사무총장이 맡았고, 강득구 의원, 윤종군 의원, 김문수 의원 등 앞서 1인1표제 추진 방향에 대해 우려를 표시해온 의원들도 참여했다. 당 지도부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최종 의결할 12월 5일 중앙위원회 회의에 앞서 TF를 가동해 당내 여론을 수렴하고 절충안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일단 형식상으론 대의원 반발을 선제적으로 흡수해 ‘졸속 추진’ 비판을 누그러뜨리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TF 논의의 핵심 의제는 영남 배려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당 안에 널리 퍼져 있다. 1인1표제가 도입되면 호남과 수도권에 비해 숫자가 적은 영남권 당원들이 주요 표결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제도 설계 단계에서 일정한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여러 구상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테이블에 오른 상태다. 대의원에게 당무위원·중앙위원 선출 권한을 부여해 조직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데 역할을 남겨두거나, 정책 관련 투표권을 별도로 보장하는 방안이 우선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대의원이 여전히 당원을 대의하는 대표성을 갖도록 제도적 공간을 남기겠다는 논리다.
지역 풀뿌리 정치 조직인 지구당 부활론도 다시 등장했다. 지구당은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폐지된 뒤에도 정치개혁 논의에서 꾸준히 재도입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특히 영남 등 취약 지역에서 상설 사무실과 후원회 운영을 통해 지역 활동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선 지구당 설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여권 안팎에 공존해 왔다.
TF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1인1표제로 인해 대의원에게 특별한 역할이 없어질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대의원이 당원을 대의할 수 있는 역할을 줘야 한다"며 "지구당을 부활해 사무실을 마련하고 후원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대의원들에게 정당 활동 기반을 좀 더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의원제 축소 불만을 조직 활동 지원 확대를 통해 달래겠다는 구상이 읽히는 대목이다.
취약 지역 대의원 표의 가치를 보정하는 방안도 물밑에서 논의되고 있다. 한 원외위원장은 "영남 등 험지 당원들의 자부심을 살릴 장치가 필요하다"며 "영남지역 대의원에게 일부 보정 비례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영남권의 낮은 조직 규모를 감안해 표 계산 과정에서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이 한 선택지로 거론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보완책이 실제 제도화 과정에서 관철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지구당 부활은 정당법을 손대야 하는 사안인 만큼 국회 논의와 여야 합의가 필수적이다. 당장 더불어민주당 내부 쟁점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과의 협상까지 감안하면 단기간 실현이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영남 표 보정 방안은 1인1표제의 기본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당원 누구에게나 동일한 표 가치를 부여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면서, 특정 지역 대의원에게만 보정 비율을 적용하는 것은 제도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형식적 평등을 훼손하는 후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당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대의원 권한 확대 역시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당 지도부 측이 제시하는 정책 투표권 배분 정도로는, 그동안 정기 전당대회와 주요 경선에서 행사해온 대의원 표 가치를 보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대의원 구조적 위상 약화를 상징적 역할 부여로 보상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난점 속에 12월 5일 중앙위원회에서도 1인1표제를 둘러싼 찬반 공방이 거세게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연기 끝에 다시 잡힌 중앙위 회의에서도 당헌·당규 개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1인1표제에 대한 반대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당헌·당규 개정을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도입 시점을 늦추더라도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지역 조직이 취약한 영남권과 중진급 의원층을 중심으로, 지도부가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누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당 안팎에서는 정청래 대표 체제 지도부가 1인1표제 카드를 접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더불어민주당 다수 당원들 사이에서 1인1표제가 당원주권주의 강화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지도부가 이를 후퇴시키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TF의 또 다른 관계자는 "1인1표제에 대한 당원 전반의 여론은 매우 호의적"이라며 "당원주권 확대 방향으로의 결론은 이미 내려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당원 직선 민주주의 강화라는 대세 흐름을 거스르긴 어렵다는 판단이 읽힌다.
이에 따라 중앙위원회는 1인1표제 도입 자체를 둘러싼 정면 충돌보다는, 영남 소외론을 완화할 수 있는 현실적 보완책 마련에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가 핵심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향후 국회 정치개혁 논의와 정당법 개정 절차와도 맞물리면서, 더불어민주당 내부 제도 개편이 향후 정당 구조 개혁 논의의 시험대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 지도부와 TF는 중앙위 의결 이후에도 대의원 역할 재조정, 지역 조직 보강, 제도 운영 평가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1인1표제 후속 조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영남 민심뿐 아니라 당내 권력 재편 구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