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R로 수사부터 수술실까지…애플, 개발자 아카데미로 현장 혁신 겨냥
확장현실과 인공지능이 수사 현장과 수술실 같은 고위험 전문 영역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애플이 포항공대에서 운영하는 디벨로퍼 아카데미가 XR 기반 과학수사 보조 앱과 의료용 3D 시뮬레이션 도구 등을 공개하며, 차세대 현장 기술 경쟁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을 넘어, 국내 개발자 생태계와 산업 현장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경북 포항공대에서 열린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 4기 수료생 성과 발표 행사 쇼케이스25에서는 XR과 AI를 접목한 실전형 서비스들이 대거 공개됐다. 과학수사 보조 앱 Re:chain 부스에는 비전 프로를 통해 재현된 범죄 현장을 체험하려는 관람객들이 몰렸다. 이 앱은 애플의 확장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를 기반으로 개발됐으며, 기획 초기 단계부터 경북경찰청과 협의해 실제 수사관들이 요구하는 기능을 반영했다.

Re:chain은 범죄 현장을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수사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피의자의 동선과 시야를 XR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재현해 사건 당시 움직임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도록 돕는다. 단순한 3D 재현을 넘어, 현장 흔적과 물증 위치를 시간 축과 함께 시각화해 기존 사진 중심 기록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는 구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지리적 프로파일링 앱 수사24가 소개됐다. 이 앱은 피의자의 통신 기록과 활동 패턴을 실시간에 가깝게 분석해 수사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도구다. 형사들이 하루 수백건에 달하는 기지국 기반 통신 기록을 엑셀로 정리하거나 일반 지도 앱에서 수동 검색하던 절차를, 지도 클러스터링과 문서 디지털 변환, AI 분석으로 자동화했다. 반복·수작업이었던 위치 분석 과정을 줄여 신속 추적을 돕는 구조로, 개인정보 보호를 고려해 일반 앱 마켓에는 비공개로 운영된다.
의료 분야에서는 HIPPO가 시선을 끌었다. HIPPO는 멸균 수술 환경에서 의료진이 음성 명령만으로 3D 장기 모델을 조작하고, 병변과 혈관 구조를 세밀하게 확인하도록 돕는 XR 기반 앱이다. 수술 도중 손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야 내에 장기 구조와 병변 위치를 띄워 시야 이동과 간단한 명령으로 회전·확대·단면 보기 등을 수행하도록 설계했다. 실제 임상 적용 시 수술 계획 수립과 시뮬레이션, 교육에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을 겨냥한 버스온다 앱도 소개됐다. 이 서비스는 탑승해야 할 버스 도착 정보를 직관적으로 전달해 버스를 놓치는 상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교통 정보와 실시간 위치 데이터를 연동해 저시력 사용자가 간판이나 노선 번호를 확인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지원한다. 음악 창작 보조 앱 Re:chord는 사용자가 허밍으로 멜로디를 녹음하면, 여기에 어울리는 코드 진행과 조성을 추천해주는 방식으로 작곡 과정을 단축한다.
행사에 참석한 오남기 서울삼성병원 교수는 이미 개발된 기술 수준만으로도 수술실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한 단계에 도달한 프로젝트들이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향후 AI를 결합한 비전 프로 기반 의료 앱이 더 다양하게 개발될 경우, 수술 및 시뮬레이션 환경 전반에서 XR 도구의 활용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는 개발자와 디자이너, 기획자 등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교육하는 글로벌 프로그램이다. 2013년 브라질에서 시작해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12개 이상 지역으로 확장됐다. 교육 과정은 코딩 역량뿐 아니라 디자인, 마케팅, 비즈니스 방법론을 포함해, 사회 문제를 실제 디지털 제품으로 해결하는 경험을 중시한다.
국내 포항 아카데미는 2022년 3월 개소 이후 매년 수료생을 배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과정을 마친 인원은 978명에 달한다. 프로그램은 4~6주 과정의 파운데이션 프로그램과 9~10개월 과정의 본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파운데이션에서 약 절반이 본 과정에 지원하는 구조로, XR과 AI, 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현장형 프로젝트가 커리큘럼의 핵심이다.
4기 학생 180명 가운데 54퍼센트는 여성으로, 연령대는 19세부터 53세까지 다양하다. 이들 가운데 전세계 개발자 컨퍼런스 WWDC25 부대행사인 스위프트 스튜던트 챌린지 수상자가 12명 배출됐다. 이 중 4명이 우수상을 수상했고, 1명은 팀쿡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결과물을 소개하는 기회를 얻었다. 글로벌 무대에서 국내 개발자 커뮤니티의 존재감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다음 5기 과정은 현재 접수 중이다. 모집은 다음달 8일 오후 1시 마감 예정이며, 교육은 내년 3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다. 19세 이상 국내 거주자라면 학력이나 코딩 경력과 무관하게 지원할 수 있어, 비전공자와 커리어 전환을 원하는 인력의 유입도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수잔 프레스콧 월드와이드 디벨로퍼 릴레이션 담당 부사장은 한국이 활기찬 개발자 커뮤니티의 중심지라고 평가하며, 포항 아카데미가 수백 명의 학습자들이 가진 열정을 실제 사회적 영향력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큰 영감이 됐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에 공개된 수사·의료·접근성 분야 프로젝트들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현장에 안착할지, 그리고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가 국내 IT와 바이오 융합 인재 생태계의 거점으로 자리잡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