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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 필요하지만 불안하다”…국민 절반 긍정에도 신뢰는 낮아

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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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에 대한 국민 인식이 필요성과 중요성 측면에서는 높지만, 안전성과 신뢰성에서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상시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안전하다고 믿는 비율은 10퍼센트대 중반에 그쳐, 제약바이오 산업의 신약 개발과 정밀의료 확대를 위해서는 정보 비대칭 해소와 투명한 운영이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사가 임상시험 참여 확대를 위한 제도와 소통 전략 재정비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과 한국임상개발협회는 27일 공동으로 진행한 2025 대국민 임상시험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달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이 중 암 환자 등 암 질환 경험자가 300명 이상 포함됐다. 양 기관은 임상시험에 대한 국민의 인식 수준과 참여 의향,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 분산형 임상시험 등 새로운 임상 방식에 대한 수용도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조사 결과 국민 다수는 임상시험의 역할과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시험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86.5퍼센트, 중요성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88.2퍼센트로 집계됐다. 전체 응답자의 53.3퍼센트는 임상시험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답했으며,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8.7퍼센트에 그쳤다. 특히 임상시험이 혁신 신약과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필수 단계라는 점에서, 제도 자체에 대한 사회적 동의는 상당 수준 형성된 것으로 해석된다.

 

연령과 질환 경험에 따라 인식 차이는 뚜렷했다. 암 질환 경험자의 임상시험 긍정 응답 비율은 60퍼센트로, 건강인 50.1퍼센트보다 높았다. 실제 치료 과정에서 임상시험의 의미와 한계를 체감한 집단일수록 제도에 대한 이해와 수용도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이 65.8퍼센트로 가장 높은 긍정 인식을 보였고, 20대는 37.1퍼센트에 그쳐 세대 간 인식 격차도 확인됐다. 고령층은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임상시험을 대안으로 인식하는 반면, 젊은 층은 위험 인식과 정보 부족이 상대적으로 크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응답자들이 꼽은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였다. 부정 응답자의 79.3퍼센트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 사용에 따른 부작용과 이상반응을 걱정한다고 답했다. 임상시험이 과학적 절차에 따라 단계별로 안전성을 평가하는 과정이라는 점이 제도 밖에서는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셈이다. 특히 초기 단계 후보물질과 후기 단계 신약 후보가 같은 위험군으로 인식되는 경향도 있어, 임상 단계별 위험 수준과 관리 체계에 대한 쉬운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임상시험 안전성에 대한 신뢰는 전반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임상시험이 안전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14.6퍼센트에 그쳤고, 보통이라고 답한 비율이 59.9퍼센트,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25.5퍼센트로 집계됐다. 즉 국민 4명 중 1명은 임상시험을 위험한 행위로 인식하고 있고, 10명 중 6명은 안전성 평가를 유보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 임상시험 관리 기준과 모니터링 체계가 국제 규범에 맞춰 강화돼 왔음에도, 대중 인식은 여전히 과거의 불신과 막연한 공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 의향을 묻는 질문에서는 절반 수준의 응답이 나왔다. 전체 응답자의 52.8퍼센트가 임상시험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보통이라고 답한 비율이 24.5퍼센트, 참여 의향이 없다는 응답이 22.7퍼센트로, 참여에 유보적이거나 소극적인 응답이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실제 참여 경험자는 6퍼센트에 불과했으며, 경험자들은 더 나은 치료효과에 대한 기대를 참여 이유로 가장 많이 꼽았다. 이 결과는 잠재적 참여 수요는 존재하나, 안전성과 정보 부족 문제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주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임상시험에 대한 인식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방문을 최소화하고 원격 모니터링과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진행하는 분산형 임상시험 개념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66.9퍼센트였다. 이는 글로벌 제약사가 웨어러블 기기, 모바일 앱, 전자의무기록 연계를 활용해 분산형 임상시험을 확대하는 흐름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다만 임상시험 방식 선호도 조사에서는 병원 방문과 원격 방식을 병행한 혼합형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50.9퍼센트로 가장 높았고, 원격 디지털 위주의 분산형 방식을 선호한다는 응답도 18.1퍼센트에 달했다. 고령층과 지방 거주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디지털 기반 임상 플랫폼 도입 여지는 충분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보 비공개와 소통 부족은 참여 확대를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으로 드러났다. 임상시험 참여 촉진을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5.4퍼센트가 임상시험과 관련된 공개적 정보 제공 확대를 꼽았다. 구체적인 시험 목적, 대상 질환과 조건, 예상되는 이득과 위험, 보상 구조, 중도 중단 기준 등 핵심 정보에 대한 체계적 안내 요구가 높은 것이다. 그동안 정보는 의료진과 제약사, 연구기관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유통돼 왔고, 일반 국민 입장에서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정리된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과 한국임상개발협회는 이번 조사를 계기로 임상시험 정보 공개와 국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인석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이사장은 임상시험의 사회적 필요성은 높게 인식되나, 안전성과 신뢰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재단은 한국임상시험참여포털을 중심으로 임상시험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스마트 임상시험 신기술개발 연구사업을 통해 분산형 요소를 활용한 임상시험 도입과 정착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이는 환자 부담을 줄이면서도 데이터 수집 효율을 높여, 임상시험의 질을 개선하는 기반 기술을 확충하는 작업으로 연결될 전망이다.

 

임윤희 한국임상개발협회 협회장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임상시험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확한 정보 제공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임상시험 설계와 수행 과정에서 환자 참여를 확대하고, 결과 공개 범위를 넓히는 방향이 신뢰 회복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와 연구 데이터 활용 간 균형, 원격 모니터링 도입에 따른 규제 정비 등 과제도 병행 과제로 지적된다. 산업계는 앞으로 임상시험이 얼마나 투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국민에게 설명되느냐에 따라, 신약 개발 속도와 디지털 기반 정밀의료 전환 속도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임상시험을 둘러싼 기술과 제도, 윤리와 소통의 균형이 바이오헬스 산업 성장의 핵심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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