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도심 속 흐린 하늘 아래”…성남의 느린 걸음, 여유를 걷다
라이프

“도심 속 흐린 하늘 아래”…성남의 느린 걸음, 여유를 걷다

윤선우 기자
입력

요즘 흐린 하늘 아래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예전엔 뿌연 구름이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성남의 흐린 날씨는 오히려 여유를 부르는 신호처럼 다가온다.

 

흐림과 선선함이 공존하는 9월, 성남시는 짙은 회색의 도심 풍경 속에서 잠깐 멈춰 숨 고르기에 좋은 하루를 선사한다. 분당구의 율동공원은 이런 기분을 한껏 품어내는 곳이다. 넉넉하게 펼쳐진 호수와 조용한 숲길, 그 사이로 천천히 걷는 사람들. 시민 김희정 씨(36)는 “햇살 쨍한 날보다 흐린 날에 더 자주 공원에 온다”고 표현했다. 무심히 걷다 보면 반복되는 일상에 한 순간의 쉼표가 된다며 평화로움을 고백했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성남시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성남시

이런 흐름은 숫자로도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실내 여가시설 이용률이 감소하는 대신 공원이나 야외 산책로 방문이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도 내 주요 도시공원 방문객은 예년에 비해 15% 가까이 상승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일상이 실내에서 자연으로, 다시 도시의 안쪽으로 번져 간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언제든 쉴 수 있고 산책할 수 있는 도심 속 녹지의 가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며, 느린 산책이 정서 안정뿐 아니라 창의성과 집중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실제 정신건강의학 전문가 정수진 씨는 “사람들이 도시공원이나 카페거리 산책을 생활화하면서 자기만의 속도로 일상을 조율하려고 한다”고 느꼈다.

 

백현동카페문화거리에서도 이런 변화는 분명하게 포착된다. 오후 시간, 거리를 따라 저마다의 이야기로 가득한 카페가 줄지어 있다. “흐린 날엔 노천테라스에서 커피잔을 놓고 오래 머물러요.”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뿐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 가족 단위 방문객들도 새로운 공간의 개방감과 안정감에 이끌린다고 말한다.

 

수정구 정토사처럼 고즈넉한 사찰도 도심 이름표를 가졌지만 다른 결의 여유를 품는다. 산책객들은 “이 고요함 때문에 일부러 사찰을 찾는다”며, 작은 기도와 명상이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고 표현했다. 김민재(42) 씨는 “날씨가 흐리면 오히려 마음이 비워지는 것 같아서 정토사 길을 걷는다”고 전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지역 커뮤니티에는 “오늘도 율동공원 한 바퀴”, “백현동거리에서 느린 오후”라는 글이 줄지어 올라온다. 큰 이벤트가 없어도, 이름 모를 나무 그늘 아래 한 숨 내쉬고 돌아오는 산책이 하루를 채워주는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성남의 흐린 하늘과 닮은 여유가 이제 도심 일상의 새로운 얼굴이 되고 있다.

윤선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성남시#율동공원#백현동카페문화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