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중앙은행 회복 시동”…이창용, 금융감독권 탈환 정치력 시험대
정치적 충돌의 지점인 금융감독권을 두고 한국은행과 정부가 다시 맞붙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감독 권한을 상실한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정치력이 금융감독체계 개편 국면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1997년 한은이 금융감독 권한을 내준 뒤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했다는 평가 속에,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한은의 숙원 해결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한국은행의 은행감독 기능은 1950년 한은 설립과 함께 시작돼 1961년 은행감독원으로 확대됐으나, 1997년 IMF 사태를 계기로 금융기관 감독권이 통합금융감독원(현 금융감독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당시 이경식 전 한은 총재가 정부와 IMF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은행감독원의 분리·통합을 공식화했으며, 여기에 김민석 현 국무총리가 재정경제위원회 법안소위 초선의원으로 참여한 사실도 부각된다.

한은은 이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강한 반발과 잃어버린 입지에 대한 뼈아픈 회고를 남겼다. 한은 노조의 강력한 저지와 총재 초상화 게시 거부 등 상징적 여파도 이어졌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 박영선, 송영길 전 의원 등 국회에서 한은 감독권 환원을 위한 한은법 개정안이 연이어 발의됐으나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주열 전 총재 재임기에도 감독권 역할 확대 주장과 금감원 반발이 맞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금융감독체계 개편 의지를 표명한 점이 논의 재점화의 계기가 됐다. 이창용 총재 역시 한은 내 구조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며 은행감독권 회복 입장을 분명히 해 정부와 여당 설득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은법 등 관련 법률의 대대적 정비와 여야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난관도 적지 않다.
한은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등 신종 금융 이슈와 감독권을 연계하며 정책적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말씀하시듯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라며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보였다. 이는 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의와 한은의 향후 역할 강화 전략에 무게를 싣는 행보로 해석된다. 노조 출신 인사들도 "중앙은행 본연의 기능인 통화·신용정책을 제대로 펴려면 감독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향후 국회 논의와 정부·여당의 입장 변화가 관건이다. 정치권이 '한국은행 50년사'에 기록된 과거 갈등을 넘어 중장기적 금융안정 구조에 합의할지 주목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금융감독권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본격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