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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대다수 심각한 위기의식"…국민의힘 소장파, 계엄 개별 사과 카드로 장동혁 압박

신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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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사태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정면 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차원의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요구하는 소장파 의원들의 움직임이 거세지자, 장동혁 대표 체제 지도부는 내부 단결을 우선하며 거리를 두고 있어 갈등이 고조되는 모양새다.

 

김재섭 의원은 27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도부에서 사과와 성찰 메시지가 나가면 좋겠고 그게 안 되면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12·3 계엄 1주년을 앞두고 사과 성명이 준비되고 있다는 보도와 관련해 "제가 알기로는 꽤 많은 의원이 뭐라도 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명에 참여할 의원 규모에 대해 김 의원은 "10명이 넘어갈 수도 있다고 본다"며 "저는 당연히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용태 의원도 당연히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원내 교섭단체 수준으로 20명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게 제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의원 대다수는 아주 심각한 위기의식과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며 "실제로 이름을 올리는 여부와 무관하게 의원들 사이에서 사과·반성해야 하지 않느냐는 컨센서스가 상당히 있는 것은 맞는다"고 강조했다.

 

성명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방향이 담길지에 대해선 "너무 당연한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계엄 사태 책임을 분명히 하고 전직 대통령과의 선 긋기를 통해 중도층을 겨냥해야 한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같은 당 김용태 의원도 SBS 라디오에 나와 지도부를 향해 거듭 사과 메시지를 요구했다. 그는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다고 하더라도 지도부에서 12월 3일에는 계엄과 관련한 반성 메시지가 그대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도부 메시지에는) 총체적인 과오에 대한 반성과 다짐이 있어야 하고, 12·3 계엄에 대한 규정을 다시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은 "의원들은 지도부 입장을 기다리고 있고, 만에 하나 입장을 내지 않는다면 다양한 의견들이 모아져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서도 당 지도부의 사과를 공개 요구했고, 국회 의원총회 발언에서도 같은 취지의 요구를 이어가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개혁 성향 재선 의원 그룹도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최근 장동혁 대표를 만나 12·3 계엄 1주년 메시지에 사과와 반성의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재선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12·3 메시지에 담겨야 할 내용에 대한 의견을 전했지만 아직 회신받지는 못했다"며 "당 지도부의 결단을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장파와 재선 그룹의 행보는 장동혁 대표의 행보와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장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1년을 앞둔 시점에서 사과 대신 보수 지지층 결집에 방점을 찍은 메시지를 내고 있어서다. 그는 지난 22일부터 연일 지방을 찾아 여당의 공세에 맞선 내부 단결을 강조하는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장 대표는 25일 지방 일정에서 여당 등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는 이른바 윤어게인 세력, 이른바 아스팔트 극우 지지층을 두둔하는 발언도 내놨다. 그는 광장 집회를 거론하며 "이곳에 나와 대한민국과 자녀를 위해 소리치는 것을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당내 이견 표출이 더 큰 문제라는 취지로 지적했다.

 

계엄 사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장 대표는 계엄 관련 메시지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지금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사실상 지도부 차원의 사과는 시기상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당내에선 소장파가 주도하는 개별 사과와 지도부의 신중 기조가 충돌할 경우 계파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층 민심 이탈을 막으려면 최소한 계엄 사태에 대한 평가와 반성은 필요하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12·3 계엄 1주년을 계기로 당 차원의 공식 메시지를 어떻게 조율할지 고심을 이어갈 전망이다. 지도부가 사과와 거리 두기를 고수할 경우 소장파의 개별 성명과 행동이 현실화될 수 있고, 반대로 일정 수준의 반성 메시지가 마련되면 내부 갈등은 다소 수그러들 수 있다는 관측이 동시에 나온다. 정치권은 국민의힘의 선택이 내년 지방선거 전략과 보수 재편 구도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향후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신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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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장동혁#국민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