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보증금 돌려막기, 도박에 108억”…부산 354억 전세사기 일당 구속

오태희 기자
입력

변제 능력도 없이 다세대주택 9채를 매입해 전세 임대사업을 벌이던 30대 남성이 세입자 300여 명의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보증금을 돌려막는 구조로 사업을 이어가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까지 180억 원을 대신 지급하게 하면서 전세제도의 허점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17일 부산경찰청 형사기동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사기) 위반 혐의로 전세사기 일당 21명을 검거하고, 주범 30대 A씨를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부산 KBS
부산 KBS

경찰에 따르면 A씨 일당은 2018년부터 올해 2월까지 부산 수영구·해운대구·연제구·부산진구 일대에서 자기 자본이 거의 없는 상태로 임대사업을 시작했다. 제3자의 자금을 빌려 토지를 산 뒤 이를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짓고, 완공된 건물을 다시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기존 토지 매입비와 대출금을 갚는 구조였으며, 전체 취득 비용 651억 원 중 508억 원이 금융기관 대출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업이 진행될수록 자금난이 심해지자 A씨는 신규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으로 기존 건물 대출 잔금을 갚는 ‘보증금 돌려막기’ 방식으로 사업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미 건물값보다 금융기관 대출과 임차보증금의 합계가 더 큰 이른바 ‘깡통주택’ 상태였기 때문에, 건물을 처분하더라도 세입자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 경찰 설명이다.

 

그럼에도 A씨 일당은 전세 계약을 계속 체결해 총 325명에게 354억 원의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피해를 발생시켰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세입자 보증금 중 60억 원을 기존 대출 상환에 쓰는 한편, 108억 원을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입자들의 전 재산이 개인 도박과 부실 운영에 전용된 셈이다.

 

피해 세대 152곳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HUG가 대신 180억 원을 지급했다. 경찰은 A씨가 처음부터 HUG 구상권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고 보고, 보증기관을 속인 사기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피해액이 50억 원을 넘어서면서, 경찰은 일반 사기보다 형량이 무거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범행 과정에서 공범들의 조직적인 허위 설명 정황도 확인됐다. 건물관리인과 명의대여자 등은 세입자들에게 “근저당이 건물가의 10%에 불과하다”, “건물 시세가 120억 원이라 안전하다”는 취지로 말하며 불안을 잠재운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은 근저당 설정액, 전세보증보험 가입 여부 등 핵심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사실과 다르게 안내해 피해를 키운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피해자 B씨는 공범들의 설명을 믿고 1억 5천만 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건물 전체에 약 75억 원 규모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자 A씨는 “계좌가 묶였다”며 반환을 거부했고, B씨는 끝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라고 경찰은 전했다.

 

이번 사건은 자본력과 상환 능력 검증이 미흡한 상태에서 다세대·다가구 위주의 전세 임대사업이 가능했던 구조와, 중개 단계에서 임차인이 정보를 충분히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을 동시에 드러냈다는 평가다. 대규모 피해와 보증기관의 구상권 부담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임대인·중개인에 대한 사전·사후 관리 강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전세 계약 전 전세보증보험 가입 여부 확인, 국토부 실거래가 조회, HUG 안심전세 앱을 통한 악성 임대인 조회는 필수”라며 “서민 생계를 무너뜨리는 전세사기 같은 민생침해범죄를 강력 단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관련 금융거래 내역과 공범 역할을 추가로 확인하며 정확한 범행 경위와 자금 흐름을 계속 조사할 방침이다.

오태희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a씨#부산전세사기#hu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