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0원 초코파이도 절도냐”…항소심 무죄로 본 노동 현실의 온도
사무실 냉장고에 있던 초코파이 한 개와 커스터드 한 개, 합계 1050원이 법원을 거쳐 항소심에서 무죄 판단을 받으면서 소액 절도와 노동 현실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1심에서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던 40대 협력업체 보안 직원 A씨는 항소심 무죄로 절도 전과를 피할 가능성을 열어 두게 됐다.
사건은 지난해 1월 18일 새벽 4시께 전북 완주군 한 물류회사 사무실에서 발생했다. 협력업체 소속 보안 직원 A씨(41)는 원청 사무실 냉장고에 있던 450원 상당 초코파이 1개와 600원 상당 커스터드 과자 1개를 꺼내 먹었다가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물류회사 소장은 CCTV 화면을 통해 이 장면을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했고, 새벽 근무 중 허기를 달랜 한 번의 행동은 형사 사건으로 비화했다.

초기 수사와 1심 단계에서 절도액의 규모는 핵심 쟁점이 아니었다. 검찰은 액수가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A씨를 벌금 50만원에 약식기소했고, 법원은 이를 벌금 5만원의 약식명령으로 감경했다. 그러나 A씨는 약식명령을 수용할 경우 경비업법상 절도 전력이 남아 현 직장을 잃을 수 있다고 보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지난 5월 열린 1심 재판부는 협력업체 직원 출입이 제한된 원청 사무실 구조, 냉장고가 사무 공간 안쪽에 위치한 점, 간식에 대한 처분 권한이 A씨에게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절도 고의를 인정하고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각박한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취지의 언급을 남기면서도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국면은 항소심에서 달라졌다. 전주지법 형사2부(김도형 부장판사)는 27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새벽 시간대 물류 현장에서의 관행과 근무 형태를 면밀히 살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탁송 기사들로부터 냉장고 안에 있는 간식을 꺼내 먹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초코파이를 꺼내 먹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현실적인 승낙이 없었더라도 간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오인할 만한 사정이 충분하다”고 보며,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물건을 가져간다’는 고의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항소심 심리 과정에서 드러난 현장 정황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새벽 시간에 근무하던 탁송 기사들과 보안업체 직원들이 냉장고 간식을 자유롭게 이용해 왔다는 진술, 탁송 기사들이 감사의 표시로 간식을 가져와 함께 나눠 먹었다는 진술 등이 제출됐다. 재판부는 이러한 진술들을 종합해 볼 때 A씨가 간식 이용을 허용받았다고 믿을 여지가 충분해, 절도죄의 고의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초코파이 절도 항소 무죄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1050원 때문에 사람을 실직 기로로 몰아야 하느냐”는 비판 여론이 빠르게 형성됐다. 검찰은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달 27일 시민위원회를 열어 사건 처리 방향에 관한 의견을 청취했다. 이후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당초 약식기소 당시 벌금형보다 낮은 ‘선고유예’를 구형했다. 다수 시민위원이 선처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형사 사법 절차에 사회적 감각을 반영하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법원은 형량 조정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절도죄 성립 자체를 부정하며 무죄를 선택했다.
이 사건은 소액 절도와 관련한 형사 처벌 기준, 노동자에 대한 신뢰와 처벌 사이의 경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050원 상당 간식은 경제적 가치만 보면 매우 적지만, 경비업법과 연동되면 한 노동자의 직업 유지와 경력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심 판결이 확정됐다면 A씨가 경비 업무를 지속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식적인 허락 여부만을 기준으로 처벌 여부를 가르는 것이 적절한지, 현장의 관행과 암묵적 합의, 노동자 사이에 형성된 신뢰까지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초소액 절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관행이 노동 현장을 불신의 공간으로 만든다”며 수사기관의 기소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또 다른 시각에서는 “소액이라도 타인의 재산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관행이 용인될 경우, 기업 내 재산 보호 규범이 흔들릴 수 있다”며 사건별 세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형사 절차를 통해 해결할 사안인지, 회사 내부 징계나 조정 절차로 풀 수 있는 사안인지를 가려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검찰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갈 경우, 소액 절도 사건에서의 고의 인정 기준과 노동 현장을 둘러싼 관행 반영 여부가 다시 한 번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과도한 형사 절차에 비해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만큼, 향후 수사기관과 법원이 유사 사건에서 어디까지를 범죄로, 어디부터를 현장의 생활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이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