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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웹3 결합 금융인프라"…네이버·두나무, 나스닥 대신 생태계 승부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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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 결합한 차세대 디지털 금융 인프라 구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 네이버가 두나무를 네이버파이낸셜의 100퍼센트 자회사로 편입해 AI와 웹3 기술을 묶는 대형 딜을 공식화했다. 다만 시장에서 제기된 네이버파이낸셜의 미국 나스닥 상장, 모회사 네이버와의 재합병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며, 우선 글로벌 웹3 금융 생태계 조성과 기술 투자에 힘을 싣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업계에서는 국내 빅테크와 디지털 자산 사업자의 결합이 글로벌 핀테크 경쟁 구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이버와 두나무는 전날 각각 이사회를 열고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해 두나무를 네이버 계열사로 편입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거래가 예정대로 내년 6월 마무리되면 두나무는 네이버파이낸셜의 100퍼센트 자회사, 네이버의 손자회사로 재편된다. 두나무는 디지털 자산 거래 플랫폼 업비트와 자체 블록체인 인프라 기와체인을 보유한 국내 대표 웹3 기업으로, 연간 결제 규모 80조원을 넘긴 네이버파이낸셜의 간편결제 인프라와 결합하게 된다.

시장에서는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나무를 품은 뒤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장기적으로 네이버가 네이버파이낸셜을 흡수합병할 것이라는 추정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경기 성남 네이버 사옥 1784에서 열린 공동 기자간담회에서 나스닥 상장이나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합병 같은 구체적 구조 재편 계획은 정해진 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향후 상장을 검토하게 될 경우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히며, 국내에서 중복 상장 이슈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번 거래의 성격에 대해 네이버파이낸셜을 단순히 자회사로 분리해 상장 가치를 키우는 구조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기업 가치를 가진 파트너와 협력해 필요 시 글로벌 자본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검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네이버와 네이버파이낸셜 간 합병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할 가능성이 낮다고 선을 긋고, 독립된 구조에서 각 법인이 역할을 분담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네이버는 이번 계열 통합을 AI와 웹3 기반 글로벌 금융 기술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규정했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네이버의 AI 역량이 웹3와 결합해야 차세대 디지털 금융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디지털 금융산업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고, 아직 글로벌 빅테크가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않은 영역에서 도전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에 없는 AI와 웹3 융합 기술과 기획을 통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의장은 사회가 이러한 새로운 시도와 협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봐 달라고 요청하며, 규제 리스크 완화와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AI 시대에 대한민국이 기술 강국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여러 기업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번 통합을 세 젊은 경영진인 최수연 네이버 대표, 박상진 네이버파이낸셜 대표, 오경석 두나무 대표가 이끄는 대표적인 협력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앞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과 역량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두 회사의 결합으로 구축될 기술 기반은 AI 검색과 추천, 결제 인프라, 디지털 자산 거래, 자체 블록체인까지 포괄하는 형태다. 네이버는 검색과 클라우드에 최적화된 대규모 언어모델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갖추고 있고, 네이버파이낸셜은 3천4백만명 이상 사용자를 가진 간편결제와 금융 플랫폼 운영 경험을 쌓아왔다. 여기에 글로벌 톱티어 디지털 자산 거래량을 기록해온 업비트와 기와체인 기술을 보유한 두나무가 더해지면서, 사용자부터 데이터, 기술, 서비스, 자본력까지 이어지는 풀라인업 금융 기술 생태계를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최 대표는 이번 딜 완성 후 글로벌 진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는 양사 비전과 거래 구조에 대해 외부 이해관계자의 충분한 이해를 확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통합 이후에는 글로벌 웹3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 준비를 하는 한편 함께 일하는 조직 문화를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검색·쇼핑·콘텐츠에서 축적된 네이버의 데이터와 사용자 접점이,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인프라와 결합할 경우 글로벌 디지털 금융 플랫폼 경쟁에서 차별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네이버는 AI와 웹3 생태계 조성을 위해 향후 5년 동안 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투자 대상은 AI와 웹3 기술의 공통 기반이 되는 GPU 등 연산 인프라, 관련 개발 인재 확보, 스타트업 투자와 보안 인프라 강화 등이 중심이 될 전망이다. 최근 생성형 AI 모델 경쟁이 GPU 수급과 데이터센터 투자를 둘러싼 장기 자본전쟁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블록체인 네트워크 운영에도 고성능 인프라와 보안 기술이 필수 요건으로 떠오른 상황을 고려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번 통합의 배경에는 이해진 의장과 송치형 두나무 회장 간 인연도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 의장은 학번 차이로 오랜 기간 교류해온 사이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인적 친분보다 사업적 논의를 통해 시너지를 확인한 결과로 이번 딜이 성사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송 회장과 최 대표가 먼저 사업 구상을 논의했고, 이후 자신이 논의에 합류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함께 할 수 있겠다는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자신을 뛰어난 개발자로 보지 않는다면서도 송 회장을 천재 개발자로 평가했다. 송 회장이 가진 기술적 역량이 네이버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협력을 제안했다는 설명이다. 송 회장 역시 제안 당시 결정까지 오랜 고민이 필요했다고 털어놓으면서도,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함께 도전할 때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최종 선택의 배경이었다고 전했다.

 

통합 발표 이후 시장에서는 송 회장이 네이버 차기 리더로 부상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 의장은 송 회장이 네이버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차기 리더로 영입할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거버넌스 변화 논의에는 거리를 뒀다. 단기간 내 리더십 교체 시나리오보다, 기술 제휴와 사업 시너지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한편 이번 거래에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관계 당국의 기업 결합 심사가 필수 절차로 남아 있다. 특히 두나무가 디지털 자산 거래 플랫폼과 스테이블코인 사업 구상을 보유한 만큼, 금융 규제와 디지털 자산 관련 법제도 정비가 상용화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국내에서는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 논의가 진행 중으로, 자본시장법과 전자금융거래법 등 기존 금융 규제 체계와의 정합성 확보도 요구된다.

 

박상진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는 이사회 결의와 공시 이후 금융당국과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업 규모와 글로벌 전략을 설명하면서 규제 당국과 협의해 나갈 것이며, 디지털 자산 기본법을 포함한 관련 법률이 제정·개정되는 과정에서 제시되는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규제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으면 웹3 기반 금융 서비스의 범위와 속도가 제한될 수 있는 만큼, 제도 환경이 실제 사업 전개 속도를 결정하는 열쇠가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네이버와 두나무의 결합이 국내 디지털 금융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핀테크 경쟁 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의 AI와 검색, 결제 플랫폼이 디지털 자산 인프라와 결합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AI와 웹3를 결합한 금융 서비스가 소비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 데이터 보호와 같은 규제 이슈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에 대한 과제도 남아 있다. 산업계는 이번 통합과 대규모 투자가 실제로 규제와 시장의 문턱을 넘어 글로벌 웹3 금융 기술 기업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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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네이버파이낸셜#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