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채상병 수사외압 은폐 위해 해외 도피"…특검, 윤석열 등 6명 재판에 넘겨

정하린 기자
입력

채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수사외압 정국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이른바 호주 도피 의혹이 정면으로 맞물렸다.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VIP 격노 전화에서 출발한 외압과 그 후속 조치로서의 호주대사 임명, 출국금지 해제 과정을 하나의 수사외압 은폐 시도로 규정하면서 정국이 거센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은 27일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포함한 핵심 피의자 6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각 부처가 통상적인 대사 임명과 출국 절차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을 확인했다며, 이를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을 숨기기 위한 해외 도피 공모로 판단했다.

특검에 따르면 사건의 출발점은 2023년 7월 31일 대통령실에서 발생한 이른바 VIP 격노였다. 당일 오전 대통령실 회의에서 윤 전 대통령은 채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책임자로 지목됐다는 보고를 들은 뒤 곧바로 이종섭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전 대통령은 통화에서 고위 지휘관들이 줄줄이 혐의자로 엮이는 상황을 문제 삼으며 "내가 누차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호통쳤다고 특검팀은 전했다.

 

이 전 장관은 그 전까지 아무런 이견 없이 결재했던 수사 결과 이첩을 돌연 중단시키고, 예정돼 있던 언론 브리핑까지 취소하도록 지시했다. 특검팀은 이 같은 조치가 수사 실무에 대한 직접 압력이자 수사외압의 출발점이라고 규정했다. 동시에 윤 전 대통령이 자신의 호통 전화에서 비롯된 외압 범행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향후 이 전 장관을 해외로 내보낼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봤다.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시점은 비판 여론이 고조되던 2023년 9월로 특정됐다. 당시에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외압 폭로를 계기로 야당 주도의 특검법이 발의되고, 채상병 사건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확산되던 때였다. 특검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9월 12일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적절한 시기에 기회를 주자"며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을 언급했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11월 19일 조 전 실장에게 이 전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는 조 전 실장을 통해 장호진 전 외교부 1차관에게 전달됐다. 장 전 차관은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이 단독으로 주목받지 않도록 다른 나라 대사 인사와 묶는 방식을 택했다. 특검팀 공소장에는 외교부 인사 담당 공무원들이 장 전 차관으로부터 "모로코를 엮어서 빨리 진행하라", "이번 주 내라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실에 상신하라", "1월 내 부임할 수 있도록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외교부는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이듬해 1월 이 전 장관의 공관장자격심사를 진행했지만, 심사 방식과 절차는 통상적인 관행과 크게 달랐다고 특검팀은 설명했다. 외국어능력 검정점수 제출을 생략했고, 사전에 적격으로 기재된 심사결과서에 위원 서명만 받는 등 형식적인 심사에 그쳤다는 판단이다. 특히 전임 호주대사 임기가 2년가량 남아있고, 불과 5개월 전 대통령실에 유임을 건의해 승인까지 받은 상황이었던 점, 춘계 정기 인사가 이미 1월에 마무리된 점을 고려할 때 이 전 장관만을 위한 원포인트 인사가 추진됐다는 게 특검팀의 분석이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인사 검증도 허점투성이로 드러났다. 특검팀에 따르면 관리단 공무원들은 이 전 장관이 자기검증질문서에서 수사 진행 여부를 묻는 항목에 아니요라고 표시했음에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당시 이 전 장관은 채상병 사건과 관련해 수사외압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의 역할도 수사 대상이 됐다. 특검 조사 결과, 검증보고서 초안에는 장관 책임론, 논란 가능성은 남아있는 이슈 등 부정적 표현이 남아 있었지만 이 전 비서관이 이 부분을 삭제한 수정 보고서를 최종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팀은 이 조치가 이 전 장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의도적으로 지웠다고 해석했다.

 

이처럼 준비된 절차는 2024년 3월 4일 외교부의 호주대사 임명 발표로 이어졌다. 강한 비판 여론이 제기됐지만 윤 전 대통령은 출국 강행 쪽으로 방향을 굳혔다. 이에 따라 법무부 수뇌부도 대통령실 의중에 맞춰 이 전 장관의 출국길을 트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는 것이 특검의 설명이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심우정 전 법무부 차관은 출국금지심의위원회 개최에 앞서 이미 출국금지 해제 방침을 사전에 정하고, 이를 이재유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게 전달했다고 특검팀은 밝혔다. 실무진은 그에 맞춰 이 전 장관의 입장을 중심으로 심의자료를 작성하고 일부 심의위원에게 해제 표결을 유도하는 등 출금 해제 결론을 뒷받침하는 준비를 했다.

 

특검은 박 전 장관이 출국금지심의위가 열린 3월 8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내놓은 발언도 문제 삼았다. 당시 박 전 장관은 이 전 장관 출국과 관련해 "개인적인 용무나 도주가 아니라 공적 업무를 수행하러 간다고 봤다"며 출금 해제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특검팀은 이 발언이 심의위원들에게 사실상 해제 결정을 압박한 신호로 작용해 최종 의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박 전 장관은 그 전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제출한 출국금지 해제 반대 의견서를 보고받은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 장·차관의 조력에 따라 출국금지는 해제됐고, 심의위 이틀 뒤인 3월 10일 이 전 장관은 신임장 수여식 절차도 생략한 채 호주로 출국했다. 특검팀은 이러한 시간표가 이 전 장관의 해외 도피를 신속하게 성사시키기 위한 치밀한 조율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정민영 순직해병 특별검사보는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이 사건은 채상병 사건 관련 수사외압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의혹의 핵심 당사자이자 대통령과의 연결고리인 이 전 장관을 외국으로 도피시킨 중대한 범행"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 절차는 통상 절차들과 굉장히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고 그 절차를 무력화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인사와 출국 절차가 형사 재판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상황을 두고 향후 헌정사에 상당한 영향을 남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야당은 수사외압과 도피 공모 의혹을 정권 차원의 범죄라고 규정하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태세고, 여권은 아직 구체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법원의 최종 판단까지는 사실관계와 법리 검증이 필요하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특검 공소 제기로 사건은 사법부 판단 단계에 넘겨졌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과 각 부처 전직 수뇌부의 구체 역할과 책임 범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정치권은 채상병 순직 수사외압과 호주 도피 의혹을 둘러싸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며, 국회는 특검 연장과 관련 법제 정비 필요성을 두고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국회는 재판 진행 경과를 지켜보며 후속 대응과 제도 개선 논의를 검토할 예정이다.

정하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윤석열#이종섭#순직해병특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