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SID, 론스타 판정 취소"…정부, 절차 위반 입증하며 배상책임 벗었다
국제투자분쟁(ISDS)을 둘러싼 최대 규모 분쟁에서 한국 정부와 론스타 측이 정면 충돌했다. 2년 4개월에 걸친 공방 끝에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ICSID 취소위원회가 정부 측 손을 들어주면서, 배상책임은 사라지고 절차 위반 여부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법무부는 19일 ICSID 취소위원회가 론스타가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사건의 원 중재판정을 취소하고, 한국 정부의 승소로 결론내렸다고 밝혔다. 취소위원회는 원 중재판정부가 하나금융지주와 론스타 간 국제상업회의소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삼아 금융위원회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점을 문제 삼았다.

원 중재판정부는 2022년 8월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한국 정부가 2억1천650만 달러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핵심 논리는 금융위원회의 하나금융지주에 대한 론스타 지분 매각 승인 과정에서 지연과 가격 인하 압박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곧바로 ICSID에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정부는 특히 금융위원회의 매각 승인 지연을 위법한 가격 인하 유도 행위로 본 판단이, 정부가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별건 ICC 상사중재 판정에 의존한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절차에 참여할 수 없는 증거를 토대로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은 절차 규칙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 금융위원회의 가격 인하가 어떤 행위에 의해 이뤄졌는지 특정되지 않았고, 국가책임과 인과관계 법리 적용에도 오류가 있다며 권한유월을 주장했다. 아울러 핵심 쟁점에 대한 이유 제시가 부족하거나 모순된 부분이 있어 이유불비에 해당한다고도 제기했다.
취소 절차 과정에서 정부는 하나금융지주와 론스타 간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원 중재판정부가 주요 증거로 채택한 점을 집중 부각했다. 당사자가 아닌 대한민국은 해당 절차에서 변론권과 반대신문권을 행사할 수 없었는데, 바로 그 판정문을 근거로 금융위원회의 위법성과 국가책임을 인정한 것은 적법절차 위반이라는 논리였다.
반면 론스타 측도 별도의 취소 신청을 내 한·벨기에 투자협정 BIT 적용 범위와 관할 판단 오류, 손해 산정 과정에서의 절차상 권리 박탈, 이유불비 등을 들어 원 중재판정 전체에 대한 취소를 요구했다. 양측은 2년 4개월간 ICSID 취소위원회에서 서면과 구두변론을 오가며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취소위원회는 그러나 정부 주장을 받아들였다. 취소위원회는 원 중재판정부가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채택하고, 이에 의존해 금융위원회의 위법행위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국제법상 근본적인 절차 규칙인 적법절차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적법절차 원칙은 모든 국가 작용이 정당한 법률에 근거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법철학적 원리로, 우리나라와 미국 등 다수 국가의 법체계에 반영돼 있다.
취소위원회는 적법절차에 위배된 증거를 토대로 금융위원회의 위법행위와 국가 책임을 인정한 만큼, 금융위원회 위법성, 국가책임, 인과관계 및 론스타 측 손해를 인정한 부분이 연쇄적으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원 판정 중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부분은 모두 사라졌다.
재정 부담도 정반대로 돌아섰다. 취소위원회는 패소자 비용 부담 원칙에 따라 론스타 측이 정부의 취소 절차상 소송비용, 즉 법률비용과 중재 비용 약 73억 원을 선고일로부터 30일 이내 지급해야 한다고 명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배상금 0원에 더해 취소 절차에 투입한 비용까지 회수하게 된 셈이다.
법무부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된 최대 규모 ISDS에서 ICSID 취소위원회가 우리 정부의 사실상 완승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ISDS 판정 취소 절차에서 정부의 배상책임이 취소된 첫 사례로, 향후 다른 ISDS 사건 대응에도 의미 있는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이번 판정을 계기로 진행 중인 다른 국제투자분쟁 사건에서도 적법절차와 국가의 정당한 규제권한을 강조하는 전략을 이어갈 방침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론스타 사건이 끝난 뒤에도 유사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어, 정부의 ISDS 대응 역량과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의가 계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