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봄까지 두 번 유행 전망”…독감백신, 12월 접종해도 충분한 이유

조민석 기자
입력

인플루엔자 유행이 예년보다 약 두 달 앞당겨지며 방역 당국과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다. 외래 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가 최근 10년 같은 기간 가운데 최고 수준을 기록하면서, 접종 적기를 놓친 것 아니냐는 불안도 커진 상황이다. 의료진은 독감 유행이 통상 겨울과 이듬해 봄 두 차례에 걸쳐 이어지는 점을 들어 11월 말과 12월 초 접종만으로도 충분한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고위험군에서는 감염 자체보다 폐렴, 입원, 사망 등 중증으로의 진행을 줄이는 수단으로 백신 접종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의료계와 질병관리청 집계에 따르면 11월 9일부터 15일까지 표본감시 의료기관 300곳을 찾은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는 66.3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 같은 기간 4.6명과 비교하면 14배 이상 급증한 수준이다. 11월 초 기준으로도 외래 1000명당 의심환자가 50.7명에 달해 최근 10년 중 같은 시기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7세에서 18세 사이 학령기 아동과 청소년에서 환자 증가가 두드러지며, 학교와 가정 내 전파 우려가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11월 1일부터 8일까지 국내에서 검출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분석한 결과, 현재 유행을 이끄는 것은 A형 독감 H3N2의 신규 하위 변이인 K 변이로 조사됐다. 전체 독감 바이러스 검출 사례 중 97.2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우세종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H3N2는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겨울철 유행을 주도해 온 계통으로, 변이가 더해지면서 면역 회피 가능성이 커졌을 수 있다는 분석이 동시에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미 독감을 앓았더라도 접종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형과 B형 안에서 다시 여러 아형과 계통으로 나뉘기 때문에 특정 계통에 한 번 감염됐다고 해서 남은 시즌 내내 재감염이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재 우세종인 H3N2 K 변이와 다른 아형이나 B형 바이러스가 뒤늦게 유입될 경우, 추가 유행이 겹치면서 재감염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의료진은 한 시즌에 한 차례 감염 이력이 있더라도 백신 접종을 통해 추가 계통에 대한 방어력을 확보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백신의 면역 형성 속도와 국내 유행 패턴을 고려하면 12월 접종도 늦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감백신 접종 후 체내에서 방어 항체가 형성되기까지는 대략 2주 정도가 필요하다. 국내 인플루엔자 유행은 통상 12월에서 다음 해 1월 사이 1차 정점을 찍은 뒤, 3월에서 4월 사이 2차 파동이 나타나는 양상을 반복해 왔다. 이 패턴을 감안하면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접종을 완료해도 겨울철과 봄철 유행 기간에 상당한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백신의 목표가 감염 차단뿐 아니라 입원, 폐렴, 사망 등 중증 합병증을 줄이는 데 있는 만큼, 유행이 이미 시작된 시점에서도 접종 가치가 유지된다고 의료계는 강조한다.  

 

윤지현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유행 시작 시기와 접종 시기를 혼동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윤 교수는 유행이 시작됐다고 해서 접종 시기가 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아직 접종하지 않았다면 최소 12월 초까지는 접종을 마치는 편이 좋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령층과 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에게는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접종이 건강 관리를 위한 현실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국내와 해외 가이드라인은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매년 독감백신 접종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 심장질환이나 폐질환,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 임산부, 영유아와 소아, 면역저하자, 의료기관과 요양시설 종사자 등이 대표적인 대상이다. 이들 집단에서 인플루엔자 감염은 단순 발열과 기침을 넘어 폐렴, 호흡부전, 기존 질환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백신 접종과 손 씻기, 마스크 착용 같은 개인 위생 관리가 중증 합병증 부담을 줄이는 핵심 수단으로 꼽힌다. 윤 교수도 고위험군 본인은 물론 가족과 밀접 접촉자까지 예방 전략에 동참해야 집단 내 감염과 중증 위험을 동시에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국내에서 사용되는 독감백신 조성은 3가 백신 체제로 전환됐다. 포함된 바이러스는 A형 두 종류인 H1N1과 H3N2, 그리고 B형 빅토리아 계열 한 종류다. 과거 4가 백신에는 B형 빅토리아와 함께 B형 야마가타 계열이 포함됐지만, 야마가타 계열은 2020년 3월 이후 전 세계 감시망에서 검출되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야마가타 계열 항원을 백신에서 제외하도록 권고했고, 국내 백신도 이 권고안을 따라 3가 조성으로 변경됐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실제 유행하지 않는 계통을 백신에 유지할 필요가 없고, 현재 유통 중인 3가 백신과 기존 4가 백신은 예방 효과와 안전성에서 동등한 수준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한다.  

 

백신 효능은 연령과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윤 교수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에서는 독감백신이 발병 자체를 약 70퍼센트에서 90퍼센트까지 줄이는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돼 있다. 65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발병 예방 효과가 약 40퍼센트 수준으로 낮아지는 대신, 입원 위험을 50퍼센트에서 60퍼센트, 사망 위험을 약 80퍼센트까지 줄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면역 기능이 떨어진 집단에서는 완전한 감염 차단보다는 중증도와 합병증을 줄이는 기능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처럼 유행이 일찍 시작돼도 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시즌에는 아직 접종하지 않은 고위험군이 지체 없이 백신을 맞는 편이 의료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바이러스 변이와 유행 양상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독감백신은 여전히 실용적인 대응 수단으로 평가된다. 병원과 보건당국은 접종률 제고와 함께 환기, 기침 예절, 자발적 격리 등 기본 방역 수칙을 병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올해 조기 유행을 계기로 계절 인플루엔자를 상시 관리해야 할 감염병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예방접종과 방역 전략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일상화될지 주목하고 있다.

조민석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독감백신#질병관리청#윤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