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부족 핑계 말라”…이재명, 사상 첫 생중계 업무보고서 속도전 주문
정권 초 국정운영 기조를 둘러싼 기강 다잡기와 속도전 요구가 맞붙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처별 업무보고를 역대 최초로 전면 생중계하며 공직사회에 강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농담을 섞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장면도 연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오후 1시 30분 세종컨벤션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부처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날 기획재정부와 국가데이터처,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등 5개 기관의 약 2시간 분량 보고가 유튜브 등을 통해 전 과정 생중계됐다. 대통령실은 국민에게 국정 운영 현황과 향후 계획을 투명하게 알리겠다는 이 대통령의 평소 철학이 반영된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먼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약 8분간 보고를 받은 뒤 양극화 완화를 위한 재정정책, 경제형벌 합리화 같은 거시 과제는 물론 통신비 안심 옵션 도입, 물가 안정을 위한 유통구조 혁신 등 생활 밀착형 정책까지 짚어가며 보완점을 제시했다. 그는 재정 운용 원칙을 강조하는 한편, 서민 부담을 줄이는 실질 대책을 주문하며 “재정정책이 국민 체감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어서 진행된 기획재정부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는 ‘잘한 점은 칭찬하되 미진한 부분은 추궁’하는 방식의 이른바 송곳 점검이 이어졌다. 임광현 국세청장의 보고를 들은 이 대통령은 “요새 열일하는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도, 과거 지시했던 세외수입 통합 관리 추진 상황을 확인했다. 임 청장이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하자, 이 대통령은 “그러니까 해야 하는데, 이제까지 뭘 하고 있었냐고 질문을 할까 말까 생각 중”이라고 말해 신속한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
마약류 차단 대책을 둘러싼 관세 행정에도 질책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이명구 관세청장을 상대로 우편집중국에 별도 인력을 파견해 국제우편·특송화물 경로의 마약류 반입을 막으라는 종전 지시 이행 상황을 물었다. 이 청장이 우편집중국 한 곳에서 시범 운영 중이라며 인력 부족과 법률적 고민을 언급하자, 이 대통령은 “고민이 아직도 안 끝났나. 내가 이 얘기를 한 지가 몇 달이 됐는데”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인력 문제를 둘러싼 소극적 해석을 정면 반박했다. 그는 “인력이 없어서 필요한 일을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우리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뭐가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하며,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관련 상황을 특별히 챙기라고 지시했다. 재정 여력과 국가안보 차원의 긴급성을 고려할 때 조직 재배치와 예산 조정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대외경제·개발협력 분야에 대한 경고성 주문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한국수출입은행장을 향해 공적개발원조 기금 운용과 관련해 “스크린을 잘하셔야 할 것 같다. 누가 시킨다고 억지로 하지 마시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원칙에 따라서 하시라”고 강조했다. 특정 이해관계나 청탁에 휘둘리지 않는 ODA 심사·집행 체계를 확립하라는 취지다.
디지털 행정개혁의 핵심 축인 국가데이터처와 관련해서는 조직 효율성을 정면에 올렸다. 이 대통령은 한국통계정보원과의 기능 중복을 거론하며 “큰 정부, 작은 정부 논란이 있으니 회피해서 정부 조직이 아닌 척하면서 은폐된 조직을 만든 게 산하기관”이라고 비판적 표현을 사용했다. 이어 “공격은 신경 쓰지 말고 국가 행정을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라”고 지시하면서, 정부 조직 개편과 디지털 행정 일원화를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보고 막바지에는 중간 간부급 실무자들에게 발언 기회를 내주며 실무 책임성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동석한 기획재정부 실·국장들에게 “실무 책임자 의견이 중요하다”며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시라”고 독려했다. 생중계 환경에서도 실무 라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대목이다.
다소 팽팽했던 공기 속에서 유머도 등장했다. 이 대통령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고향에 왔는데 한 말씀 하시지”라고 말문을 열고, “훈식이 형, 세종에 땅 산 거 아니야”라고 농담을 던져 행사장에 웃음을 자아냈다. 충남 아산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강 실장은 세종과의 지리적 인연이 깊고,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는 충남지사 등 지방선거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의 발언은 친근함을 드러내면서도 향후 정치 행보를 의식한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생중계 업무보고를 두고 공직사회 기강 강화와 직접 소통을 표방한 강공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시간 질의와 질책이 조합된 공개 점검 방식이 부처의 속도전과 책임성을 높이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장차관·청장 등 고위 공직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신중론도 공존한다는 관측이다.
이날 대통령실은 별도 논평을 통해 국민 앞에서 진행된 첫 업무보고가 각 부처의 정책 추진 동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무총리실과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는 후속 점검회의를 통해 지시 사항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는 계획이며, 청와대는 향후 다른 부처로도 생중계 업무보고 방식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