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영덕군 바다·사람 울림”…파도 안긴 머구리 형제→기적의 회복 서사로 궁금증
바다가 배경이 된 저녁 무렵, ‘동네 한 바퀴’의 발걸음은 영덕군 해안을 감싸는 지평선으로 향했다. 삼백이 넘는 여정 중에서도 익숙하면서도 낯선 푸른 길 위에서 머구리라 불리던 김병식 씨와 박수준 씨가 나눈 깊은 우정, 그리고 바다 인생의 진한 뒷이야기가 잔잔한 파문처럼 퍼졌다. 때로는 해풍이 거칠게 몰아치는 부흥해변이, 때로는 어민들이 떠난 작업장이, 또는 해녀의 따뜻한 손끝이 시청자의 감정을 흔들었다.
먼저 고향 영덕의 바닷가에서 새로운 식당의 문을 연 머구리 김병식, 그리고 소꿉친구 박수준의 동행은 바다에 흰 파도가 일렁이듯, 담백하면서도 끈끈했다. 깊은 물 아래에서 해산물을 건지는 병식 씨, 그리고 밖에서 산소 호스를 연결하고 마음을 보태는 수준 씨의 모습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우정을 증명한다. 여덟 해를 함께한 이들은 한 상 가득 차려진 싱싱한 해산물에 오랜 교감과 서로를 향한 신뢰를 쌓았다.

부흥해변에서는 서퍼 신수현이 파도를 만난다. 직장을 떠나 오롯이 바다를 택한 뒤, 해변을 삶의 터로 삼은 신수현은 15년 넘게 서핑의 매력을 몸에 새기며 국내 최초 여성 서핑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실을 때마다, 누구라도 바다의 자유를 꿈꾸게 만든다. 해맞이하는 활기와 파도의 리듬이 새롭게 그려지는 순간, 부흥해변은 시청자에게 낯선 용기와 해방의 감정을 건넸다.
그늘 아래엔 김지형 씨가 있었다. 아픈 아들의 병실을 지키며 생을 새로 써야 했던 그는, 버려진 폐그물을 하나하나 손질해 꽃게와 거북이, 물고기 인형으로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반복해 물에 씻고 다듬은 그물에서 시작된 공예는, ‘아들의 입김이 더 오래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이기에 더욱 절실하다. 질긴 그물은 치유의 재료로, 김지형 씨 가족의 시간이 돼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봄이 오면 해녀 배춘자 씨의 손은 쉴 새가 없다. 35년간 질차게 바다를 오간 그는, 남편의 투병과 네 딸의 성장 과정을 모두 찬물에 몸담은 채 지켜보고 이겨냈다. 돌미역을 손질하는 기억마다 춘자 씨에게 바다는 엄마 같은 존재로 남았다. 힘겹지만 정성껏 베어낸 미역 한 줄기마다 고단한 삶의 미소와 온기가 담긴다.
노물리 마을에는 아픈 기억이 새겨져 있다. 지난 3월, 산불로 잿더미만 남은 마을에서 주민들이 뿌연 재를 걷어내고 새벽같이 일터로 나선 모습은 무엇보다 깊은 울림을 남긴다. 떠나간 기억과 사라진 집, 어선의 자취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복구와 손님맞이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의 움직임은 회복과 희망을 상징한다.
영덕의 시간을 품은 블루로드에는 원생대부터 신생대까지 20억 년이 빚은 11곳의 지질 명소가 이어진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 이후, 화가들의 붓 끝은 대지의 시간과 파도 소리를 따라 새로운 예술로 영덕을 그려냈다. 수많은 여행자들은 바위와 파도, 바람결 속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새기며 푸른 바닷길을 걷는다.
마지막으로 축산항에는 50년째 물가자미 요리를 이어온 강상숙 씨가 있다. 선장 남편의 손끝에서 배웠던 온기와 부지런함, 그리고 넘실거리는 바다의 기억이 잦은 거친 날씨에도 변함없이 깊은 맛으로 살아난다. 선원들과 마을 이웃의 추억이 오롯이 요리 위에 얹힌다.
수많은 인연과 시간이 얽혀 바위를 닮은 영덕의 인생과 풍경, 그리고 그 길 위의 단단한 이야기가 한 편의 동화처럼 펼쳐진다. ‘동네 한 바퀴’는 5월 24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 영덕군의 푸른 바닷길 위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다양한 삶의 의미와 쉼표를 시청자 곁에 내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