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폭스 재조합 변이 포착”…영국, 유전체 분석 강화 나선다
엠폭스 감염이 아시아 여행 이력과 함께 다시 국제 보건당국의 경계선에 올라섰다. 영국 보건당국이 최근 고열과 발진 증상을 보인 환자로부터 기존과 다른 유전형의 신종 변이 바이러스를 확인하면서다. 2022년 전 세계 확산을 이끌었던 클레이드2 계열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더 높은 중증률로 알려진 클레이드1 계열의 유전적 특징이 한 바이러스 안에 섞여 있는 재조합 형태로 분석돼, 전문가들은 전파력과 중증도 변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특히 유전체 감시 체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며, 각국 공중보건 시스템의 준비 상태가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영국 가디언은 8일 현지시각으로 영국보건안전청 발표를 인용해, 아시아를 여행한 뒤 영국으로 돌아온 환자의 검체를 유전체 분석한 결과 엠폭스 바이러스의 신종 재조합 변이가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번 변이는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평가돼 온 클레이드1과, 2022년 북미와 유럽 중심 확산을 이끌었던 클레이드2의 유전적 요소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났다. 보건당국은 현재까지 확인된 임상 정보만으로는 위중도와 전파력의 변화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면서도, 추가 사례 발생 여부를 면밀히 추적하는 중이다.

엠폭스는 원래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풍토병 형태로 존재하던 인수공통감염병이다. 병원체는 엠폭스 바이러스로, 사람과 동물 모두를 감염시키는 DNA 바이러스다. 감염 경로는 다양하다. 감염자의 수포와 딱지와 같은 피부 병변에 직접 접촉하거나, 오염된 의류·침구에 닿을 때 전파가 일어날 수 있다. 기침과 재채기에서 나오는 비말을 통해 호흡기 경로로 옮겨질 수 있으며, 야생 설치류 등 감염 동물과의 접촉 역시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특성 때문에 병원, 가정, 숙박시설 등 밀폐된 생활공간에서의 접촉 관리가 방역의 핵심이 된다.
임상적으로는 최대 3주 정도의 잠복기를 거친 뒤 고열과 두통, 근육통, 전신 피로감이 먼저 나타나는 경향이 보고돼 있다. 이후 며칠 안에 얼굴과 몸통, 사지 등으로 퍼지는 발진이 동반되는데, 이 발진은 물집을 형성한 뒤 고름이 차고, 딱지로 마르면서 회복기로 이어진다. 일부 환자에서는 통증이 심하거나 2차 세균 감염, 호흡기 합병증 등이 생길 수 있어 기저질환자와 면역저하자의 경우 위험이 커진다. 이번 신종 재조합 변이가 이 임상 양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보건안전청은 발표에서 바이러스 변이는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의 일부라고 설명하면서도, 클레이드1과 클레이드2의 재조합이라는 점에 주목해 추가 분석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DNA 바이러스인 엠폭스는 일반적으로 RNA 바이러스보다 변이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서로 다른 계통이 공존하는 환경에서는 유전 물질이 섞이는 재조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사례가 단일 환자에서 관찰된 특이 사례에 그칠지, 지역사회 및 해외로 확산될 수 있는 계통으로 자리 잡을지는 향후 수주에서 수개월에 걸친 감시 결과가 중요할 전망이다.
당국은 특히 엠폭스 고위험군에 대한 백신 접종을 거듭 권고했다. 2022년 유행 당시에도 사용됐던 엠폭스 백신은 중증 예방과 감염 위험 감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돼 왔다. 영국보건안전청은 신종 재조합 변이가 기존 백신 효과를 얼마나 회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실험실 수준에서 평가를 진행할 계획이다. 아직까지 백신 회피를 시사하는 임상 자료는 보고되지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재조합 변이의 특성상 항원 구조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엠폭스를 둘러싼 글로벌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WHO는 2022년 엠폭스 확산 당시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해 각국에 감시와 진단, 백신 확보를 촉구한 데 이어, 2024년 콩고민주공화국을 중심으로 한 유행이 커지자 두 번째 비상사태를 발령했다. 이후 발생 규모가 줄어들면서 올해 9월 비상사태를 해제했지만, 각국에 유입될 수 있는 위험은 남아 있다는 평가다. WHO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0월 말 기준 전 세계 94개국에서 보고된 엠폭스 확진 사례는 약 4만 8천건, 사망자는 201명으로 집계된다.
영국의 이번 보고는 엠폭스가 특정 대륙에 국한된 풍토병이 아니라, 항공 이동과 여행을 통해 언제든지 새로운 지리적 확산과 유전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다시 보여준다. 특히 클레이드1은 콩고민주공화국 등지에서 치명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관찰돼 왔고, 클레이드2는 성적 접촉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빠른 전파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두 계열의 특성이 한 바이러스 안에 공존할 경우, 전파 패턴과 중증도 조합이 어떻게 나타날지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 공중보건 측면에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트루디 랭 영국 옥스퍼드대 글로벌보건연구 교수는 새로운 재조합 변이의 출현을 계기로 보다 세밀한 역학 조사와 임상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랭 교수는 해당 변이가 추가로 확인될 경우 전파 경로와 중증도, 임상 양상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며, 기존 변이보다 위험성이 높거나 낮은지를 평가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또 각국이 코로나19 이후 구축한 유전체 감시 인프라와 데이터 공유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엠폭스와 같은 신흥 감염병의 변이를 조기에 포착하고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는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국보건안전청도 발표를 통해 진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지속적인 유전체 감시가 중요하다고 언급하며, 재조합 변이의 정확한 유전적 구성과 단백질 구조, 숙주 세포 감염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심층 분석을 이어갈 방침을 밝혔다. 아울러 의료기관과 일선 의사들에게 발진을 동반한 발열 환자에서 최근 여행력과 접촉 이력을 면밀히 확인하고, 의심 사례는 즉시 검사와 보고 체계에 올릴 것을 요청했다. 산업계와 연구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진단키트 성능 검증과 차세대 백신 후보 설계에도 참고 데이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유전체 기반 감시와 백신 기술, 공중보건 대응 프로토콜을 고도화해 왔다. 그럼에도 엠폭스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은 동물 숙주와 인간 사회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예기치 못한 변이와 재조합을 만들어낼 여지가 크다. 변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조기에 감지하고, 과학적 데이터를 토대로 위험을 냉정하게 평가하며, 취약계층 보호와 백신·치료제 접근성을 보장하는 공중보건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계와 보건당국, 국제기구가 협력해 유전체 감시와 백신 기술, 임상 연구를 연계하는 체계를 강화할 수 있을지가 향후 엠폭스 위험관리의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계와 보건 당국은 이번 신종 재조합 변이가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 또 다른 국제적 확산의 신호가 될지를 지켜보는 한편, 기존 대응 체계를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결국 새로운 바이러스보다 늦지 않은 감시와 투명한 정보 공유, 그리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 결정이 팬데믹 시대 이후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