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에 4천억원 못 준다”…김민석 총리, ISDS 취소소송 승소 발표
정부와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분쟁이 13년 만에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을 둘러싼 법적 공방에서 한국 정부가 승소 판정을 받아내면서, 수천억원대로 추산됐던 배상 부담이 사라졌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8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오늘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취소위원회는 한국 정부와 론스타가 각각 제기한 중재판정 취소 신청 사건을 심리해 이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리는 “취소위원회는 2022년 8월 31일자 중재 판정에서 인정한 정부의 론스타에 대한 배상금 원금 2억1천650만 달러 및 이에 대한 이자의 지급 의무를 모두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당초 판정에서 인정됐던 정부 배상 책임은 현재 환율 기준 약 4천억원 규모였으나, 모두 소급해 소멸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총리는 “취소위원회는 론스타가 한국 정부가 그간 취소 절차에서 지출한 소송 비용 약 73억원을 30일 이내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가 중재 이후 취소 절차까지 이어지는 장기 분쟁에서 소송비 환수 결정까지 얻어낸 셈이다.
론스타와 한국 정부의 분쟁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46억7천950만 달러, 약 6조1천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ISDS를 제기했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천834억원에 인수한 뒤 여러 매각 협상을 추진해 왔다. 그러다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3조9천157억원에 매각했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개입으로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할 기회를 잃었고, 거래 가격까지 낮춰야 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해 왔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중재판정부는 2022년 8월 31일 판정에서 론스타의 청구액 가운데 4.6%에 해당하는 2억1천650만 달러를 한국 정부가 지급하라고 결론 냈다. 당시 환율 1천300원 기준으로 약 2천800억원 규모였다. 이후 우리 정부의 정정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배상 금액은 2억1천601만8천682달러로 소폭 조정됐다.
그러나 판정 이후 양측은 다시 쟁점으로 맞섰다. 론스타는 배상금이 충분치 않다며 2023년 7월 판정 취소 신청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취소위원회에 제출했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도 같은 해 9월 판정부의 월권,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 등을 이유로 판정 취소와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하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미중 갈등 등으로 국제 분쟁 환경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정부는 이 사건을 국가 대외 신인도와 직접 연결된 문제로 인식해 왔다. 대규모 손해배상 가능성뿐 아니라, 금융 규제 정책 전반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 다툼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컸다.
그러나 이번 취소위원회 결정으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정부 배상 의무가 전면 취소돼 예산 부담이 사라졌고, 론스타가 한국 정부의 취소 절차 소송 비용까지 부담하게 되면서 분쟁의 주도권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정치권에서는 과거 외환은행 매각 정책 판단과 금융당국의 감독 책임을 둘러싼 공방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야권은 그간 론스타 사태를 두고 전·현직 정부의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여권은 법적 분쟁을 마무리한 뒤 객관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제투자분쟁에서 취소위원회 승소를 이끌어낸 사례가 드문 만큼, 향후 한국 정부가 체결·운영 중인 투자협정 해석과 분쟁 대응 전략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와의 갈등 소지가 있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이번 판결이 선례로 언급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김 총리는 브리핑에서 “정부는 판정 취소 결정의 구체적 이유를 면밀히 분석해 향후 유사 분쟁 대응에 반영하겠다”며 “국민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온 만큼, 남은 절차도 책임 있게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취소위원회에서 승소 결정을 받아내면서, 장기화된 론스타 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국무조정실과 법무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 부처는 판정문 검토를 거쳐 후속 조치를 정리할 방침이며, 정치권은 향후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과 제도 보완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