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GPU 4000장 풀린다”…정부, 산학연 AI 가속 지원 본격화
그래픽처리장치 GPU 자원이 인공지능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가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확보한 첨단 GPU 1만장 중 4000여 장을 먼저 산학연에 개방한다. 국가 주력산업과 미래 유망 분야에서 대규모 연산이 필요한 인공지능 모델 개발을 지원해 국내 생태계의 연산 격차를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초거대 연산 인프라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가 국내 AI 경쟁력 보강을 위한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2일 추가경정예산으로 확보한 GPU 1만장 가운데 엔비디아 H200 2296장, B200 2040장을 산학연 과제를 대상으로 우선 배분하기 위한 공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 초 1차 추경을 통해 총 1만3000여 장의 GPU를 확보해 네이버클라우드, 카카오, NHN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 순차적으로 구축 중이며, 이 가운데 1만장은 클라우드 서비스 형태로 제공한다. 이번 공모는 이 물량 중 시급한 혁신 수요를 겨냥한 1차 공급 절차에 해당한다.

지원 대상이 되는 H200과 B200은 현 세대에서 고성능 대규모 언어모델과 멀티모달 AI 학습에 적합한 GPU로 꼽힌다. 특히 H200은 기존 H100 대비 메모리 대역폭과 용량이 확대돼 초거대 모델 학습 효율을 높인다는 점에서, B200은 차세대 아키텍처 기반으로 에너지 효율과 처리 성능을 개선한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고난도 산업용 AI 모델, 정밀의료 플랫폼, 자율주행·로보틱스, 제조 공정 최적화 등에서 기존 인프라로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실험을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과기정통부는 국가 주력산업 혁신과 미래유망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AI 서비스와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과제를 중심으로 선별 지원할 계획이다. 과제당 지원 규모는 H200의 경우 서버 2대에서 최대 32대까지, GPU 장수로는 16장에서 256장까지 배정 가능하다. B200은 서버 2대에서 최대 16대까지, GPU 16장부터 128장까지로 설정했으며, 지원 기간은 최대 12개월이다. 이 수준이면 자체 보유가 사실상 어려운 스타트업과 대학, 연구기관도 글로벌 수준의 대형 모델 학습과 정교한 파인튜닝, 대규모 시뮬레이션을 시도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정 절차는 기술적 성과뿐 아니라 산업 및 사회에 미칠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따지도록 설계됐다. 과제 평가는 기술·사회적 파급효과, AI 생태계 기여도, 수요자의 역량과 준비도, 목표 달성 실현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전문가 심사를 통해 이뤄지며, 지역 소재 기업에는 가점을 부여한다. 특히 H200 64장 이상 또는 B200 32장 이상을 신청하는 과제는 추가 적격성 인터뷰를 진행해 대규모 GPU 자원이 실제로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세부 계획을 점검한다. 고성능 자원이 제한된 만큼 연구 목표, 데이터 확보 수준, 운영 능력을 면밀하게 검증하겠다는 취지다.
비용 체계는 기관 유형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대학과 공공연구기관 등 학연 기관은 GPU 자원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산업계에서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시장 가격의 약 5~10퍼센트 수준에서 자부담을 부과해, 상용 클라우드 대비 부담을 크게 낮췄다. 여기에 청년기업에는 추가 50퍼센트 할인을 적용해 초기 단계 스타트업의 진입 장벽을 더 낮춘다. 그동안 AI 분야에서 막대한 GPU 비용이 혁신 서비스 개발의 걸림돌로 지적돼 온 만큼, 이번 지원 구조가 자본력에 따른 격차를 완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는 GPU 인프라 공급 체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사전 베타테스트도 병행한다. B200 512장, 서버 64대 규모 물량을 활용한 무상 베타테스트를 별도로 운영해 이용자 경험을 축적하고 시스템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베타테스트 참여자 공모는 이날부터 내년 1월 28일까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진행되며, 테스트 과정에서 제기되는 사용성 문제와 장애 요인을 향후 본 사업에 반영해 실제 연구와 서비스 개발 단계에서의 불편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국 빅테크와 중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초대형 데이터센터와 AI 전용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가 이미 본격화된 상황이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들은 GPU 확보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어 왔다. 정부가 공공 조달을 통해 대규모 GPU를 선 확보한 뒤 민간과 공유하는 방식은 국내 여건에서 선택 가능한 현실적 대응으로 평가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물량 확대뿐 아니라 장기적인 인프라 투자 일관성과 데이터·인력 생태계 조성 정책이 함께 가야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향후 GPU 구매사업 진행 경과와 세부 공모 내용을 설명하는 현장 설명회를 열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구체적인 지원 요건과 신청 절차를 제공할 계획이다. 김경만 과기정통부 인공지능정책실장은 이번 공모를 통해 산학연에 첨단 GPU 자원을 공급해 혁신적인 AI 연구와 서비스 개발을 지원하고 국가 AI 경쟁력 강화와 혁신 생태계 조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막대한 초기 투자 없이도 고성능 연산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는 만큼, 이번 GPU 지원 사업이 실제 시장과 연구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지 지켜보는 분위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