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에 선 이방인”…이상은·홍미애·박춘기, 바람 앞에 멈춰선 인간→칠레 빙하의 품이 던진 질문
찬 바람이 맨 얼굴을 스치고, 드높은 빙하의 설원이 광활한 품을 내어준 그 순간, 이상은과 홍미애, 박춘기는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감정이 전해지는 무언의 침묵을 나눴다. ‘영상앨범 산’ 1000회를 맞아 특별한 길을 택한 이들이 파타고니아의 바람에 스미는 과정을 따라가자, 시청자들 역시 이름 모를 이방인의 발자국처럼 그 길에 조심스레 마음을 얹게 됐다. 익숙한 내레이션으로 동행한 김동완의 목소리는 남미 대지의 낯설고 위대한 공간과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의 의미를 차분하게 일깨웠다.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안, 얼어붙은 침묵과 비바람이 번갈아 얼굴을 드러낸다. 먼 이국, 엘 칼라파테에서 하루를 지친 채 버스로 여섯 시간을 달려 국경을 넘은 일행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에메랄드 호수를 만났다. 세찬 비가 그치자 환한 무지개가 펼쳐지고, 어둠 속 텐트촌은 사연을 품은 이들의 숨소리와 기대감으로 채워졌다. 격렬한 비바람과 고요한 침묵이 교차하는 밤, 인간은 단지 자연의 일부임을 조심스레 실감한다.

새벽이 밝자, 트레커들은 페오에 호수를 곁에 두고 굽이진 길로 나아간다.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서부터 왕복 22킬로미터, 빙하 전망대로 이끄는 길은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고사목 군락이 연이어 맞이한다. 찬란한 설산과 흐르는 구름, 파타고니아 대지에 새겨진 인간의 흔적과 책임을 돌이키며, 탐험가들은 자연 앞 스스로의 작음을 더 깊이 되짚는다. 바람 아래 휜 나무와 출렁이는 호수가 이 땅에 새겨진 세월을 말없이 전한다.
시간이 흐르며 로스 파토스 호수가 보여주는 색, 빛, 공기의 변화는 하루 안에 사계절을 담는다. 횡단하는 맹금류와 설산이 어우러진 절경은 한없이 고요하다가도, 어느새 폭풍우 같은 감탄을 이끌어낸다. 검게 그을린 나무 둥치와 가파른 절벽을 지나자 압도적인 그레이 빙하가 드러나고, 은은한 회색 호수 위로 쏟아지는 푸른 얼음의 벽은 탐험가들을 말없이 멈춰 세운다. 바람에 찬 얼굴을 내놓은 채, 이들은 자연을 마주한 유한한 존재임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진귀한 풍광을 딛고서 이상은, 홍미애, 박춘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대지 위에서 번져나가는 의미를 찾았다. 김동완은 첫 산행 도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빙하 산행 내레이션으로 이번 여정에 올곧은 생명감을 불어넣었다. 시청자 또한 이들의 긴 호흡, 천천한 걸음을 통해 스스로 남미 파타고니아를 걷는 작은 여행자가 됐다.
가닿을 수 없는 곳, 그러나 마음으로는 채울 수 있는 파타고니아의 절경이 ‘영상앨범 산’ 1000회 특집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거대한 자연이 건네는 묵언의 배움이 길 위에 남고, 여행자의 발자국은 자연과 사람, 위대함과 겸허라는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바람의 길 칠레 그레이 빙하 편은 8월 4일 일요일 오전 7시 10분, 더욱 깊은 울림으로 시청자를 찾아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