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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웅, 감정 해부한 자화상”…회화로 빚은 존재의 층위→시적 기록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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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웅, 감정 해부한 자화상”…회화로 빚은 존재의 층위→시적 기록의 전환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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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에 눈부신 여름날, 박기웅은 자신의 깊은 내면을 회화로 끌어올려 세상에 내놓았다. ‘퓨처 슈퍼히어로’라는 전시와 신작 속에서 그는 배우라는 익숙한 정체성을 넘어, 한 사람의 작가로서 삶과 예술, 감정과 질문, 회복과 상실의 풍경을 한 장의 자화상으로 펼쳐 보였다. 검고 화려한 붓질 아래 익명의 복면, 뒤섞인 선과 악, 만화와 현실 사이에서 서로를 응시하는 슈퍼히어로와 빌런의 얼굴은 보는 이의 감정까지 자연스레 덧칠했다.  

 

박기웅의 그림에는 삶과 예술, 개인과 타자라는 양극의 정체성이 층층이 교차하고 있었다. 익숙한 만화적 캐릭터는 불편함과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며, 직접적으로 명명되지 않은 슬픔과 유희, 선과 악, 분열된 자아들이 어울려 기묘하면서도 서정적인 울림을 더했다. 특히 대표작 ‘Epitome’에 담긴 일그러진 크루엘라의 미소는 단순한 악의 은유가 아니라 연민, 분노, 두려움이 교차하는 복합적 감정의 초상으로, ‘악당도 영웅도 아닌’ 존재의 미묘함을 담아냈다.  

“다중적 얼굴의 자화상”…박기웅, 회화로 쓴 존재의 미학→감정 해부 / 배우 박기웅 인스타그램
“다중적 얼굴의 자화상”…박기웅, 회화로 쓴 존재의 미학→감정 해부 / 배우 박기웅 인스타그램

이번 전시는 박기웅이 삶에서 만난 애틋한 존재, 곧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음악 같은 기록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가 내 인생의 진짜 슈퍼히어로였다’고 털어놓으며 신작 ‘미래영웅’에 그리움과 상실, 기억의 기운을 고스란히 남겼다. 다시 세운 영웅의 얼굴 뒤에는 익살과 애틋함, 그리고 마지막 대화 같은 감정의 굴절이 가을 햇살처럼 번졌다.  

 

‘서스넛’ 시리즈에서는 호두의 단단함에 감정의 껍질과 분열된 자아가 담겼다. 겹겹의 색, 각기 다른 질감 위에 살아 숨 쉬는 감정은 일상의 기쁨과 불안을 동시에 비추었고, ‘ActingNut’ 시리즈에서는 연기자로서의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사유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박기웅의 자화상은 단지 한 인물의 얼굴이 아닌, 우리 모두가 내면에 숨기고 있는 다양한 자아의 은유적 초상이었고, 예술이라는 언어로 멈추지 않는 응시를 시도했다.  

 

팬들은 “한 장의 그림에 감정의 결이 살아 있다” “박기웅만의 색과 시선이 깊게 녹아 있다”며 진정성에 깊은 감동을 표했다. 작품마다 일상과 자아, 상실과 회복의 메시지가 고요히 스며들면서, 박기웅은 배우이자 작가, 아들이자 창작자라는 경계 위에서 그만의 독자적인 시적 기록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번 ‘퓨처 슈퍼히어로’ 시리즈와 함께 박기웅의 신작 전시는 예술이 건넬 수 있는 위로와 감정의 해부학, 그리고 현대인의 복잡성을 품은 또 다른 자화상으로 오래 기억될 전망이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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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웅#퓨처슈퍼히어로#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