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기준에 머문 배임죄”…대한상공회의소, 처벌 현실화·경영판단 보호 촉구
배임죄의 엄격한 처벌 기준과 모호한 적용 범위를 두고 경제계와 법조계의 논쟁이 재점화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개정된 상법 시행을 계기로 이사의 경영 판단 책임을 경감하는 방향으로 배임죄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기업 현장에서는 법적 기준의 변화와 처벌 강도가 맞서며 혼란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19일 대한상공회의소는 ‘배임죄 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지난달 22일 개정 상법이 시행됐으나 주주에 대한 배임 성립 여부, 경영판단 원칙 적용 여부 등 실무 혼선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상의는 특경법상 배임죄에 대해 35년 전 기준의 가중처벌 규정, 고소‧고발의 문턱이 낮은 점, 민사 분쟁의 형사화 같은 난점을 지목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이 규정하는 배임 가중처벌 이득액 기준이 마지막으로 조정된 건 1990년이다. 상의는 “당시 5억원, 50억원 기준이 지금 기준으로는 각각 15억원, 150억원의 가치가 된다”며 시대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경영 과정에서의 손실이나 투자 실패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발하며, 최근 상법 개정으로 이같은 현상이 심화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절차상 배임죄가 민사적 분쟁의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과의 비교에서도 우리나라만 특경법에 따라 배임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을 유지하고 있음을 상의는 지적했다. 특경법상 배임으로 이득액이 50억원을 넘으면 ‘5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은 배임의 경우 사기죄로 규율하거나 주로 민사적 구제를 택하며, 독일과 일본도 별도 가중처벌 조항을 두지 않고 있다.
또한 배임죄는 실제 침해뿐 아니라 침해의 위험, 명백한 고의 외에 미필적 고의까지도 적용 대상이 되고 있어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4~2023년) 형사 배임‧횡령 사건 무죄율은 6.7%로, 전체 평균 3.2%의 두 배를 넘겼다.
상의는 이를 근거로 “선진국과 달리 엄격한 가중처벌 규정, 사문화된 상법 특별배임죄의 폐지, 최소한 이득액 기준의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경영판단의 원칙을 상법과 형법에 명확히 규정해, 이사가 충분한 정보와 주의 의무 하에 결정을 내렸을 때 손해 발생만으로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최근 이사 책임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진 만큼, 경영 판단 보호 장치도 균형 있게 뒷받침돼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의 역할을 거론했다. 그는 “정부의 ‘경제형벌 합리화 TF’가 마련한 규정 정비 계획에 발맞춰 국회에서 배임죄 개선 논의가 신속히 시작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배임죄 현실화와 경영 위축 방지를 위한 논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는 분위기다.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배임죄 제도 개선 방안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