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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머금은 연꽃”…비 오는 날 찾는 함안의 조용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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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머금은 연꽃”…비 오는 날 찾는 함안의 조용한 여행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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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진다. 소란스러운 여름 햇살보다, 빗소리와 느린 걸음에 더 마음이 가는 날이 있다. 오늘처럼 흐리고 조용하게 비가 내리는 날, 경상남도 함안은 한적한 풍경과 촉촉한 공기로 특별한 여유를 선사한다.

 

요즘은 맑은 날보다 비가 오는 날의 고요함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SNS에서는 우산을 쓰고 함안연꽃테마파크에서 산책하거나, 비 내리는 봉성저수지의 수면을 바라보는 인증샷이 종종 올라온다. 북적임을 피해 느긋함을 만끽하려는 여행자들은 ‘비 오는 날 명소’를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한다.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함안 낙화놀이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함안 낙화놀이

이런 변화는 숫자에서도 감지된다. 8월 비 내리는 오늘 오후, 함안의 기온은 22.3도로 선선하고, 습도는 96%에 달한다. 미세먼지와 자외선도 모두 좋은 수준을 보였다. 여름휴가철에도 붐비지 않는 명소를 찾는 이들 사이에서 함안은 비 오는 날의 은밀한 쉼터가 된다.

 

함안연꽃테마파크는 이 계절, 빗속에서 가장 아름답다. 수백 송이의 연꽃이 물기를 머금고 더 깊고 짙은 빛을 낸다. 연꽃 사이 산책로를 우산을 들고 걷다 보면, 한 번쯤은 빗소리와 함께 마음까지 씻겨 나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봉성저수지 역시 빗방울이 수면을 두드리는 잔잔한 소리와, 안개 낀 산의 실루엣이 어우러져 평소보다 더 감각적인 자연 풍경을 안겨준다.

 

전통의 멋을 간직한 무진정 정자는 고요한 정원과 비 떨어지는 처마 밑에서 잠시 멈추어 사색을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빗속에서 문득 옛 시인이 된 듯, 느린 호흡으로 풍경을 곱씹어보는 시간이 남는다. 고려동 유적지의 돌담길과 고가를 걷다 보면, 비 오는 날만의 정적이 오래된 골목과 더 깊이 어우러진다.

 

함안양떼목장에선 어린이와 가족들이 비를 피해 양들과 교감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는다. 초록 들판과 하얀 양 떼가 대비를 이루는 풍경은 비 오는 날에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다.

 

댓글 반응도 따뜻하다. “조용하고 운치 있는 풍경이 좋아 일부러 흐린 날을 기다렸다”거나, “비가 와서 오히려 여행지의 여유로움이 배가 됐다”는 경험담이 이어진다. 비 오는 함안은 여행의 고정관념을 바꿔놓는다. 맑은 하늘만이 좋은 여행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천천히 걷는 우산 속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흐린 날의 함안을 천천히 걷는 것, 그 자체가 깊고 새로운 여행의 방식이 된다.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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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연꽃테마파크#무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