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벽 허문다”…경찰, 잠정조치 청구권·AI 수사 강화 로드맵 가동
수사 권한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 간 힘겨루기가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경찰이 스토킹·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조치의 직접 청구와 경제·금융범죄 수사 확대 등 수사역량 강화 종합 로드맵을 내놓으며, ‘검찰 독점 구조’에 변화를 예고했다. 수사 효율성 강화를 위한 AI 시스템 도입까지 맞물리면서 검경 수사권 재편 논쟁이 재점화되는 모습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5일, ‘수사역량 강화 종합 로드맵’을 발표했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공식 입장을 통해 “수사의 전 과정을 재정비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수사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경찰이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임시·잠정조치를 검찰을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청구하도록 사법경찰관권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지금까지는 경찰이 관련 조치를 검찰에 먼저 신청하고, 검찰이 최종 판단해 법원에 넘기는 절차였다. 그러나 경찰의 신청이 검찰 단계에서 기각될 경우 실제 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반복됐다. 지난달 경기 의정부에서 벌어진 스토킹 살인 사건 또한, 검찰의 잠정조치 기각이 논란이 됐다. 경찰은 이에 대응해, 스토킹처벌법·가정폭력처벌법상 사법경찰관에게 직접 청구권을 부여하는 법 개정을 입법과제로 제시했다.
경제·금융범죄 수사에서의 경찰 권한 확대도 포함됐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 등에서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찰뿐만 아니라 사법경찰관에게도 고발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이 추진된다. 또한,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으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정보가 검경에 동일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방침을 밝혔다. 지금까지는 검찰이 우선 접근권을 보유해 경찰 수사가 한계를 지적받아 왔다.
수사 과정의 공정성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디지털 기반도 강화된다. 경찰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수사 쟁점 제공, 영장 신청서 자동 작성 등 AI 수사지원시스템(KICS-AI) 도입을 예고했다. 신종범죄 대응을 위해 가상자산, 다크웹 추적·분석 시스템도 개발될 예정이다. 사안별로 경찰서장 등 관서장 승인을 의무화해 초동 단계 내사 공정성을 높인다.
경찰은 피의자 제외 사건 관계인 원격화상 조사, 영상녹화·진술녹음 인프라 확충, 변호사회 주관 사법경찰관 평가 전국 확대 등도 함께 추진한다. 수사 전문성 강화를 위해 시도 경찰청 내 전담수사체제를 구축하고, 총경·경정 등 수사 현장 투입도 확대할 계획이다.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에선 경찰 권한 확대안에 대해 수사편의주의나 권한남용 우려를 제기하지만, 경찰 측은 “수사 책임성과 공정성 확보,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의 검찰개혁 기조와 맞물려 국회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경찰은 최근 평균 사건처리 기간을 2022년 67.7일, 2023년 63일, 2024년 56.2일, 올해 6월 기준 55.2일로 단축했다고 밝혔다. 수사관 평균 경력도 8.5년까지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국회는 경찰의 법 개정 요구를 둘러싸고 여야 간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며 향후 추가 제도 개선도 검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