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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간부전 산모, 간이식 성공…의료IT로 생명선 잇다

한채린 기자
입력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동시에 살리기 위한 디지털 기반 중환자 의료 체계가 위력을 입증했다. 태반조기박리로 인한 대량출혈과 급성 간부전까지 겪은 35세 산모가 응급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한 뒤, 인공지능이 결합된 중환자 모니터링과 병원 간 통합 의료정보 시스템을 통해 신속한 간이식 연계가 이뤄지면서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을 되찾았다. 업계에서는 의료IT와 장기이식 시스템이 결합된 이번 사례를 고위험 산모 치료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이화의료원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거주하는 35세 산모 신씨는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임신 39주차에 유도 분만을 계획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7월 중순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질 출혈이 발생했고, 임신성 고혈압을 동반한 고위험 산모였던 만큼 1차 의료진은 전자의무기록을 토대로 태반조기박리 가능성을 의심했다. 전원 판단 직후 응급 중환자 정보를 이대목동병원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전종관 산부인과 교수가 이끄는 고위험산모팀으로 이송이 결정됐다.  

신씨가 이대목동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태아가 분만되기 전 태반이 먼저 자궁에서 떨어지는 태반조기박리로 인해 대량출혈이 진행 중이었다. 병원은 응급수술 알고리즘에 따라 혈액검사와 영상 정보를 즉시 디지털로 수집·분석했고, 수술실 가동 현황과 마취과 지원 가능 인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즉시 응급 제왕절개가 시행됐다. 그 결과 심각한 저산소증 위험 상황에서 남아를 무사히 출산했다.  

 

출산 직후에는 대량출혈과 혈압 변화 등 생체신호가 중환자실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연동됐다. 그러나 일반 병실로 옮긴 후 재출혈이 발생하며 신씨는 심정지에 빠졌다. 당시 의료진은 모니터링 시스템의 이상 알람을 토대로 현장에 신속히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심정지 시간과 약물 투여 기록 등이 실시간으로 전산에 축적되며 이후 치료 전략 수립에 활용됐다.  

 

심폐소생술 이후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신씨에게 간성혼수와 간신부전이 동반된 급성 간부전이 확인됐다. 혈액검사 수치와 영상 판독 결과가 통합 데이터로 누적되면서 간기능 저하 속도가 기존 간부전 지침 기준을 빠르게 넘어서자, 중환자의학과 심홍진 교수는 이화의료원 내 장기이식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이대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에 간이식 의뢰를 진행했다.  

 

이대목동병원과 이대서울병원 간에는 통합 의료정보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신씨의 진단 결과와 수술 경과, 투여 약제 목록, 혈액형과 조직적합성 정보 등이 이대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에 자동 연동됐다. 덕분에 환자 이송 전부터 전호수 소화기내과 교수와 외과팀이 간이식 적합성 검토를 시작할 수 있었고, 이식 수술 전 평가와 사전 시뮬레이션도 병행됐다.  

 

신씨는 이대서울병원으로 전원된 뒤 전호수 교수의 입원 관리 아래 5일간 집중 치료를 받았다. 이 기간 급성 간부전의 진행 경과와 뇌부종 가능성이 연속형 데이터로 수집되며, 국내 장기이식 네트워크에 전달된 최신 상태 정보는 간 이식 대기 순위 판단에도 반영됐다. 병원은 신씨를 7일 이내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급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근거로 응급도 1급 환자로 등록했다.  

 

등록 후 타 병원에서 뇌사기증자가 발생했고, 공여자 정보와 신씨의 의료 데이터가 장기이식 관리 시스템을 통해 매칭되면서 간 공여가 확정됐다. 이대서울병원 홍근, 이정무 외과 교수팀은 공여 병원에서 확보한 간의 상태를 이식 수술 전 영상과 수술 계획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전 검토한 뒤,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진 수술을 집도해 성공적으로 이식을 완료했다.  

 

당시 수술 과정에서 가장 큰 변수는 출혈이었다. 급성 간부전과 대량출혈 후 상태였던 신씨는 수술 중 지혈이 쉽지 않았고, 수술 이후에도 출혈이 지속돼 재수술이 필요했다. 수술 중 실시간 혈역학 모니터링 데이터와 혈액 응고 인자 검사 결과는 중환자의학과와 수술팀이 공유하면서 출혈 원인을 단계적으로 파악하는 데 활용됐다. 지혈에 성공한 뒤에는 장기이식 후 거부반응 여부, 감염 징후, 신장기능 변화 등 수십 개의 지표가 디지털 대시보드 형태로 관리됐다.  

 

집중 치료가 이어지면서 신씨 상태는 서서히 호전됐다. 급성 간부전으로 인한 뇌증상이 가라앉고 간 기능 수치가 안정 범위에 진입하자 이식 수술 2주 후 일반 병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식 후 24일째 되는 날에는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던 아기와 산모가 처음으로 대면했다. 이 과정 역시 영상과 사진이 병원 기록 시스템에 남아 고위험 산모 및 장기이식 후 회복 사례 데이터로 축적됐다.  

 

홍근 이대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 센터장은 신씨 사례에 대해 급성 간부전 환자는 진단 후 7일 이내 간이식을 받지 못하면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만큼, 장기이식 등록과 공여자 매칭까지의 속도가 생사를 가른다고 설명했다. 또 병원 간 정보를 수기로 전달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통합 의료정보 시스템과 장기이식 네트워크가 연동되면서 응급도 1급 산모 같은 초고위험 환자를 더 빠르게 수술까지 이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중환자의학과, 소화기내과, 외과, 장기이식센터에 이르기까지 각 전문 분야 의료진이 디지털 의료 인프라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협력한 점도 이번 사례의 핵심으로 꼽힌다. 산모의 임신성 고혈압과 태반조기박리 이력, 재출혈과 심정지 기록, 간부전 진행 속도와 장기이식 적합성 데이터가 하나의 플랫폼에서 관리되면서 진단과 치료 의사결정까지의 시간을 현저히 줄였기 때문이다.  

 

국내외 의료계에서는 고위험 산모를 포함한 중증 환자 치료에서 병원 간 정보 연계, 장기이식 관리 시스템, 인공지능 기반 예후 예측 모델의 활용도가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로 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장기이식 대기자 우선순위 판단에 AI를 도입하는 실증 연구가 진행 중이며, 출혈량 예측과 중환자실 이탈 위험 조기 경보에도 머신러닝 모델이 시범 적용되고 있다.  

 

다만 급성 간부전과 같이 시간에 극도로 민감한 질환에서 디지털 기술이 실제 생존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데이터 축적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 범위를 둘러싼 규제 역시 장기이식 네트워크와 병원 간 데이터 연동을 확대하는 데 주요 변수로 꼽힌다.  

 

이번 사례는 첨단 의료IT 인프라와 체계화된 장기이식 시스템, 다학제 협진 구조가 결합할 경우, 예상치 못한 초응급 상황에서도 산모와 신생아 모두를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고위험 산모 치료 영역에서 이러한 디지털 기반 통합 진료 모델이 얼마나 널리 확산될지, 그리고 제도와 인프라가 이를 어떻게 뒷받침할지 주시하고 있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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