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아래 한 길 걸었다”…김기제, 당구 37년 외길→스포츠 도약에 헌신
새벽의 적막 속, 한 스포츠인의 긴 시간이 조용히 끝을 맺었다. 김기제 빌리어즈 발행인은 ‘월간 당구’(현 빌리어즈)를 37년간 펴내며, 당구에 쏟아진 편견을 걷고 스포츠의 위상으로 이끌어왔다. 창간 초창기 시장의 혹독한 시련에도 “당구를 스포츠로 키우겠다”는 믿음만큼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193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김기제는 언론인의 길을 시작해 1987년 ‘월간 당구’를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 당구가 오락으로 취급받던 시기에 시작된 도전이었다. 3개월 만에 적자를 겪었지만 기존 잡지 판권 매각 등에 힘입어 발행을 이어가며, 오랜 세월 당구계의 동반자로 남았다. 이 과정에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문제 등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권두언과 칼럼을 통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더했다. 부산아시안게임 당구 정식종목 채택 대책위원회 출범에 밑거름이 되었고, 정식 종목 확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기제의 영향력은 학술 연구와 제도 개선 분야에서도 두드러졌다. 2014년에는 ‘초중고 정화 구역 내 당구장 설치금지 규제 철폐 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교육환경보호법 개정에 힘을 보태 2022년, 전국 학교 인근 당구장 설치가 가능해지는 길을 열었다. 또 일본 외무성 문서를 바탕으로, 한국 당구의 근원을 1884년으로 재정립하며 ‘한국 당구 135년사’ 집필을 최근까지 이어왔다. 스포츠로서 당구의 위상과 뿌리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은 김기제의 평생 과제이기도 했다.
현장의 동료들은 “당구를 체육대회의 중심에 세운 것도 김기제의 헌신 때문”이라며 깊은 감사를 전했다. 김기제는 가족 곁을 떠났지만, 스포츠의 빛을 오롯이 당구 위에 남기는 길을 묵묵히 걸었다.
성장의 언저리에서 스산했던 어둠, 빛으로 이끄는 손, 남겨진 이들의 기억이 조용히 번진다. 김기제의 긴 발자취는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김기제 발행인의 마지막 길은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 특6호실에서 준비됐으며, 장지는 이천남한강공원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