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신약값, 미국보다 싸다”…정부, 이중약가 도입해 공백 최소화 추진

전민준 기자
입력

의약품 실제 가격과 공시가격이 달라지는 ‘이중 약가 제도’가 신약 부족 사태 막기의 해법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최혜국 약가 참조(MFN) 정책 영향으로 글로벌 제약사들의 한국 신약 출시가 늦어지거나 중단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정부가 제도 보완에 나설 전망이다. 업계에선 이번 논의를 글로벌 신약 경쟁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해석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신약 도입이 지연되거나 철수될 위험이 있어 신약 보상을 강화하고 신속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의 투명한 약가 공개가 해외 약가 결정에 불리하게 참조될 수 있다”며, 표시가격과 실제 거래가격이 다른 구조, 즉 이중 약가 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근 주요 신약, 특히 항암·희귀질환 치료제 도입이 미뤄지는 배경에는 미국 MFN 약가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MFN은 미국 내 약값을 OECD 등 주요 선진국 최저가로 맞추는 것으로, ‘한국의 가격이 미국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제약사들의 우려를 낳았다. 한지아 의원은 “국내 약가는 OECD의 5분의 1 수준이고 시장 매출도 미미해 제약사들이 한국을 외면하고 있다”며, 실제로 일부 신약이 약가 노출 전에 철수하거나 미도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제약시장 규모가 세계의 1~2%에 불과한 가운데, 공식 약가가 낮게 책정돼 있으면 미국·유럽 등 대형 시장의 약가 인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를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약사가 실거래가는 높이고, 고시가격만 낮게 공개하는 이중가격제를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이 이중가격 운영은 주로 재정부담이 큰 신약, 즉 위험분담계약제(RSA)가 적용되는 희귀질환·항암제 등에 한정돼 있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신약을 고시가로만 공개하고 실제론 5000만원에 거래함으로써 해외 약가 참조에 따른 가격 하락을 방지하는 식이다. 업계에서는 “필수 신약 도입을 위해 RSA 외 품목까지 이중가격제도가 확장돼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유럽에서는 국가별 가격차 정보를 일정 부분 비공개하는 방식으로 국내 시장을 보호하는 사례가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약가를 투명하게 공개해 오히려 글로벌 가격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제도 확대와 관련해선 보험 재정, 환자 부담, 의료 접근성 간 미묘한 균형점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신약 공급 공백을 막을 복합 정책 대안이 절실하다”며, “정부의 이중가격제 보완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산업계는 이번 정부 방향 전환이 신약 도입 공백 해소에 결정적 역할을 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전민준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정은경#이중약가#mf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