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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차기대표 해킹신뢰회복·AI전략이 승부 가른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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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차기 대표이사 선임 경쟁에 33명이 뛰어들면서, 해킹 사고로 흔들린 신뢰 회복과 인공지능 전략 재정비를 둘러싼 ICT 산업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신·클라우드·AI를 동시에 아우르는 KT의 리더십 교체는 국내 디지털 인프라와 기업용 ICT 시장의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선 이번 인선이 해킹 리스크 대응과 AI·클라우드 전환, 지배구조 개편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4일부터 16일 오후 6시까지 진행한 공개 모집과 사내 후보, 전문기관 추천을 통해 차기 대표 후보군 33명을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2023년 김영섭 대표 선임 당시 27명이 지원한 것과 비교하면 6명이 늘어난 수치로, 경쟁 강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이추위는 사외이사 8명 전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연내 최종 1인을 정해 이사회에 보고한 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마무리한다.  

주주 추천 몫에서는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 정관상 전체 주식의 0.5퍼센트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는 대표 후보를 추천할 수 있지만, 1대 주주인 현대자동차그룹이 단순 투자 입장을 유지하면서 경영 개입에 나서지 않은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KT 차기 수장은 사실상 이사회와 외부 전문가 그룹이 주도하는 구조에서 결정되는 셈이다.  

 

이번 인선의 특징은 외부 인선자문단 가동이다. 이추위는 기업경영, 산업, 리더십·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외부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꾸려 서류 평가를 진행한다. 자문단은 후보자들에 대한 평가 의견을 이추위에 전달하고, 이추위는 이를 참고해 면접 대상자 숏리스트를 압축할 계획이다. 다만 평가 과정의 공정성을 이유로 자문단 구성과 세부 평가 기준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후보 숏리스트 공개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KT는 2019년 구현모 대표, 2023년 김영섭 대표 선임 과정에서 최종 면접 대상자의 이름과 경력을 공개해 과거 제기됐던 밀실 인사와 낙하산 논란 진화를 시도한 바 있다. 특히 현 이사회 사외이사 8명 중 7명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선임된 만큼,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투명한 절차 운영이 더 중요해진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추위가 공식 명단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김태호 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 박윤영 전 KT 사장, 이현석 KT 부사장, 주형철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 등이 잠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고 보고 있다.  

 

KT가 제시한 차기 대표 역량은 명확하다. 대형 통신·플랫폼 기업을 이끌 수 있는 기업경영 경험과 산업·시장·기술에 대한 전문지식, 대주주·고객·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글로벌 시각 기반의 리더십 등이 핵심 요건으로 꼽힌다. 디지털 인프라 사업자가 되겠다는 KT의 전략을 감안하면 통신,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AI 기술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투자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는 평가다.  

 

무단 소액결제 해킹 사고 수습 능력은 사실상 필수 조건으로 떠올랐다. KT는 최근 수개월 동안 해킹 피해 범위와 원인 설명이 여러 차례 수정되면서 고객 신뢰 하락을 겪었다. 고객 입장에서는 통신망과 결제 시스템이 모두 얽힌 사건이어서, 기술적 보안뿐 아니라 사고 경위 공개, 피해 보상 기준, 재발 방지 대책을 얼마나 투명하게 제시하느냐가 중요하다. 차기 대표는 사고 관련 사실관계를 재정리하고, 데이터 보안과 인증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보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무적 리스크 관리도 과제로 남는다. KT의 관리 책임이 점차 명확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위약금 면제에 따른 가입자 이탈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회사가 밝힌 향후 5년간 1조원 규모의 보안 투자를 실제 업무 현장에 안착시키고, 통신망·결제·고객정보 시스템 전반의 보안 아키텍처를 다시 설계하는 실행력도 새 경영진의 성과를 가르는 지표가 될 전망이다.  

 

조직 안정화와 AI 전략 조정 역시 KT의 디지털 전환 사업 방향과 직결되는 이슈다. 차기 대표 체제에서는 내년도 경영 계획과 중장기 투자 로드맵을 다시 짜야 한다. 해킹 사고 이후 떨어진 내부 사기를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통신 본업과 AI·클라우드·B2B 솔루션 사업 간 균형을 재조정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KT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업을 중심으로 AI 전략을 추진해 왔는데, 차기 대표가 이 협업 구조를 유지할지, 자체 AI 역량 강화나 다른 빅테크와의 제휴 확대를 선택할지에 따라 국내 AI 인프라와 기업용 서비스 시장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KT의 지배구조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특정 지배주주 없이 소유가 분산된 구조 탓에 정권 교체기마다 대표 교체와 검찰 수사가 반복돼 왔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사외이사 선임 과정 투명성 확보, CEO 승계 프로그램 제도화 등은 통신·플랫폼 기업으로서의 사업 전략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글로벌 통신사들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AI 등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상황에서, KT가 장기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정책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지배구조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선임 결과가 KT의 해킹 리스크 관리 수준과 AI·디지털 인프라 전략, 지배구조 개편 의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새 리더십이 통신과 AI, 보안을 아우르는 중장기 전략을 제시하며 실제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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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현대자동차그룹#마이크로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