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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용 AI 플랫폼"…세브란스, 응급 이송 고도화 나선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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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단계에서부터 인공지능 기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지능형 플랫폼이 응급의료 현장에 도입될 준비를 마치고 있다. 구급대원이 환자 처치와 동시에 기록, 병원 선정, 정보 전달까지 떠안으면서 발생해온 골든타임 손실을 줄이겠다는 목표다. 업계에서는 이 기술이 응급실 과밀화와 이송 지연을 완화하는 응급의료 디지털 전환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30일 심장혈관병원 심장내과 장혁재 교수가 소방청 연구개발 과제로 추진한 지능형 구급활동지원 플랫폼 1단계 연구개발을 완료하고 통합 시제품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이번 플랫폼은 구급차와 응급실을 하나의 정보 흐름으로 묶어 응급실 이송 전 과정에 인공지능을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구급 현장에서는 심전도, 혈압, 산소포화도 등 각종 바이탈 사인을 확인하는 동시에, 환자 상태를 수기로 기록하고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구급대원의 기억에 크게 의존하는 기록이 많고, 전화 중심의 병원 문의와 정보 전달로 인해 이송 지연과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반복돼 왔다. 특히 환자의 중증도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면 적정 병원 선택에 실패하는 경우도 발생해왔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줄이기 위해 총 10종의 인공지능 모델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했다. 기능은 네 가지 카테고리로 구성된다. 우선 응급 대화에 특화한 음성인식 모델을 적용한 응급정보 변환 인공지능이 있다.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말로 보고하는 환자 상태와 처치 내용 등을 실시간으로 구조화된 텍스트와 코드로 변환해 구급활동일지 작성을 자동화하는 구조다.

 

또 하나의 축은 응급상황 예측 인공지능이다. 현장에서 수집되는 바이탈 사인과 초기 진찰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의 상태 악화 가능성을 예측하는 모델을 통합해, 중증 악화 위험이 높은 환자를 조기에 선별하고 이송 전략을 조정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동일한 증상이라도 쇼크 진행 위험이 높은 환자를 우선적으로 상급병원으로 보내는 식의 판단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응급환자 평가 인공지능도 탑재됐다. 이는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 구급차 내 폐쇄회로 텔레비전에 촬영된 환자 영상을 기반으로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를 사전에 적용하는 사전 KTAS 모델을 통합한 것이다. 공식 triage 이전 단계에서 영상과 생체 신호를 결합해 중증도를 예측함으로써, 응급실 의료진이 도착 전부터 환자 우선순위와 필요한 자원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다.

 

마지막으로 구급현장 지원 인공지능은 환자 적정 처치 가이드와 이송병원 선정 모델을 포함한다. 환자 상태에 따라 필요한 응급 처치 프로토콜을 제시하고, 지역 내 병원별 진료 역량, 실시간 수용 가능성, 이송 거리 등을 종합해 최적 이송병원을 추천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응급실 과밀도가 높은 도심 지역에서 반복되는 병원 간 전전 이송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혁재 교수 연구팀이 구현한 통합 플랫폼은 구급활동일지 자동 작성, 최적 이송 의사결정 지원, 현장 사진과 평가 소견의 실시간 전송 등 응급 이송에 필요한 주요 기능을 단일 시스템에서 제공한다. 구급대원은 태블릿과 음성 인터페이스를 통해 입력 부담을 줄이고, 응급실 의료진은 사전 분류 정보를 바탕으로 진료 준비를 서두를 수 있는 구조다.

 

1단계 연구개발 과정에서 플랫폼을 실제 사용해 본 구급대원들은 사용 편의성과 업무 효율, 현장 대응 속도, 시스템 신뢰도 항목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종합 만족도는 평가 기준점인 80점을 크게 상회한 86점으로 집계됐다. 특히 최적 이송병원 추천 기능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참조 가능한 객관적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연구는 국내 응급의료 분야에서 여러 종류의 인공지능을 현장-병원 연계 관점에서 패키지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해외에서는 구급차 내 심전도 자동 판독이나 단일 질환 중심 예측 모델 활용 사례가 점차 늘고 있으나, 한국처럼 국가 단위 119 시스템과 연동된 통합 플랫폼 수준의 시도는 아직 많지 않은 편이다. 연구팀은 향후 글로벌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알고리즘 성능과 운용 모델을 추가로 정교화한다는 계획이다.

 

2단계 연구에서는 실제 운영 환경에서 플랫폼을 실증 적용해 객관적 지표를 수집한다. 응답 속도 개선, 구급대원의 기록 부담 감소 정도, 현장과 병원 간 정보 전달 정확도, 시스템 안정성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알고리즘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고도화할 방침이다. 구급대원 교육 체계, 응급실 워크플로 조정 등 제도·운영 측면 개선도 병행될 가능성이 있다.

 

응급 의료 AI의 상용화에는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인허가, 개인정보 보호, 공공데이터 활용 규정 등 여러 제도적 검토가 필요하다. 구급차 내 영상과 음성, 바이탈 사인 정보가 동시에 수집·분석되는 만큼, 데이터 암호화와 접근 권한 관리, 익명화 수준에 대한 논의도 뒤따를 전망이다. 소방청과 보건의료 당국이 실제 서비스 도입 단계에서 어떤 기준을 마련할지가 향후 확산 속도를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장혁재 교수는 1단계 성과에 대해 현장과 병원 간 협업에 필요한 핵심 기능 통합과 10종 인공지능 모델 고도화를 통해 현장 기록, 판단, 전달을 지원하는 기반을 확보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급차 내 구급활동 효율을 높이고, 환자 상태에 대한 정밀한 기록이 적절한 응급실 의료진에게 빠르게 전달돼 환자 생존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번 과제는 장 교수가 총괄을 맡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이 참여기관으로 참여했다. 응급의료 체계에 AI 기반 의사결정 지원을 본격 이식하려는 공공-의료-ICT 융합 사례로, 산업계와 의료계는 기술이 실제 현장에 안착해 응급실 뺑뺑이 관행을 어느 수준까지 줄일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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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장혁재#지능형구급활동지원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