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5년 위험도 AI 분석…루닛, FDA 문 두드리며 북미 공략
유방암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북미 정밀 검진 시장 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 의료 인공지능 기업 루닛이 유방촬영 영상만으로 향후 5년 내 유방암 발생 가능성을 산출하는 소프트웨어를 앞세워 미국 식품의약국 허가 절차에 돌입했다. 업계에서는 단순 판독 보조를 넘어 암 발생 위험도 예측까지 AI의 역할이 확장되면서, 유방암 검진 패러다임 전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루닛은 유방암 위험도 예측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리스크에 대한 시판 전 허가 신청을 미국 식품의약국에 제출했다고 8일 밝혔다. 루닛이 이번에 신청한 절차는 510k로, 새 의료기기가 미국 시장에 출시되기 위해서는 기존에 시판 중인 동종 제품과 동등 수준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갖췄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의료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미국 내 상용 서비스로 자리 잡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대표 인허가 관문이다.

루닛 인사이트 리스크는 유방촬영술, 즉 맘모그래피 영상을 인공지능 모델로 분석해 개별 환자의 향후 5년 유방암 발생 확률을 예측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기존 위험도 평가 모델은 가족력, 키와 체중, 초경 나이, 출산 횟수, 생활습관 등 다양한 요인을 설문을 통해 수집해야 했고, 이렇게 얻은 정보로 계산한 위험 점수의 예측력이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루닛의 솔루션은 영상 정보와 환자 나이만을 입력값으로 활용해 개인별 절대 위험도를 도출하도록 설계됐다. 회사 측은 이 방식이 설문 누락과 기억 오류를 줄이고 실제 암 발생과의 상관도를 높여 맞춤형 검진 및 예방 전략 수립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 유방촬영 판독 보조 인공지능이 당장의 병변 여부를 판별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향후 암 발생 가능성을 수치화해 위험군을 조기에 가려낸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환자는 보다 짧은 주기로 영상 검사를 받거나 MRI, 초음파 등 추가 검사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관리 전략을 조정할 수 있다. 반대로 저위험군은 과잉 검사와 불필요한 방사선 노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스크리닝 정책을 최적화할 수 있어, 환자와 의료기관 양측에 효율성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다.
루닛 인사이트 리스크는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2025년 4월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은 바 있다. 혁신의료기기 제도는 중대한 질환 진단과 치료에서 잠재적 이점을 가진 의료기기에 대해 심사 과정에서 우선순위와 밀착 자문을 제공하는 트랙이다. 루닛은 여기에 더해 식품의약국 전주기 자문 프로그램 TAP에도 선정돼 개발 단계에서부터 규제 요건을 사전에 점검해 왔다. 개발사와 규제 당국, 임상의, 환자 단체 등 이해관계자가 초기부터 의견을 교환하는 구조를 활용해 허가 전략과 미국 내 보험 수가 연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진입 전략을 고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닛은 지난해 북미영상의학회 RSNA 2024에서 루닛 인터내셔널과 통합한 형태의 위험도 예측 솔루션을 처음 선보이며, 2025년 안에 식품의약국 허가를 제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번 510k 제출로 계획했던 일정대로 북미 시장 출시를 위한 공식 인허가 단계에 들어간 셈이다. 회사는 심사 과정을 감안해 2026년 안에 미국 시판 허가 획득을 목표로 잡고 있으며, 승인 시점을 전후해 현지 병원과 영상의학 그룹을 대상으로 한 상용 도입 협의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루닛 인사이트 리스크가 허가를 받으면, 루닛이 이미 보유한 유방촬영 판독 보조 소프트웨어 루닛 인사이트 MMG와 디지털 유방단층촬영용 루닛 인사이트 DBT, 그리고 루닛 인터내셔널의 다양한 유방암 관리 솔루션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계하는 구상이 현실화될 수 있다. 스크리닝 단계에서는 위험도 예측 기능으로 개인별 검진 주기와 검사 방법을 설계하고, 실제 검사에서는 병변 탐지 인공지능으로 판독을 보조하며, 이후 추적 관리 단계에서는 누적 영상과 위험도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전주기 관리 체계가 구축되는 방식이다.
글로벌 유방암 AI 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유사한 위험도 예측 솔루션 경쟁이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의 일부 영상 분석 기업과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도 유방촬영 기반 장기 위험 예측 알고리즘을 앞세워 임상 연구와 상용화를 병행하고 있다. 루닛은 혁신의료기기 지정과 전주기 자문 프로그램 참여 경험을 바탕으로 식품의약국과의 규제 커뮤니케이션에서 선제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을 자사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다만 유럽과 달리 미국 시장에서는 보험 수가 인정과 가이드라인 반영 여부가 실제 수요 확산을 가르는 변수로 작용해, 임상 근거 축적과 경제성 평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유방암 위험 예측 AI가 실제 임상에서 널리 쓰이기 위해서는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제도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 영상과 연령 정보만으로 작동하는 구조라고 해도, 대규모 영상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편향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의료 AI의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규제 논의가 지속되고 있어, 알고리즘 성능뿐 아니라 결과 해석과 리포트 방식에서도 표준을 맞추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루닛 인사이트 리스크가 유방암 연구 분야 최고 권위자들이 개발한 검증된 위험 예측 솔루션을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이번 미국 식품의약국 허가 신청을 계기로 유방암에 대한 통합적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인공지능 생태계를 구축하고, 유방암 검진의 패러다임을 재정의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산업계는 루닛의 시도가 실제 북미 의료 현장에서 어떤 수용성을 얻을지, 그리고 위험 예측 중심의 스크리닝 모델이 기존 검진 체계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