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록, 무채색 속 사유의 고요”…침잠하는 눈빛에 시간 멈추다→시선 머무는 깊이
차분히 가라앉은 오후, 고요와 긴장의 경계에 선 김신록이 공간을 마주했다. 단정하게 짧게 다듬은 흑단빛 머리와 손끝까지 가지런히 모은 몸짓, 어둡지만 단정한 재킷과 심플한 셔츠는 정제된 무채색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완성했다. 벽에는 빛이 머무르고, 아무런 장식 없는 무대 같은 방이 배우 김신록만의 사유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냈다.
김신록은 깊은 곳을 응시하는 시선으로 한 순간도 자신을 흔들지 않았다. 무표정 속에 스민 주저와 결연, 아련한 그리움이 뒤섞이며 보는 이에게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사계절의 경계, 여름의 끝자락에 머물렀지만 공간은 차분하고 맑은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신록은 최근 ‘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 Endless’라는 작품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조용히 밝혔다. 연출가가 “관객이 무대를 그냥 구경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며, 배우가 아니라 인물이 무대에 서길 바란다는 의미를 곱씹었다. 1인극에서 여러 배역을 소화해내야 하는 현실과 자신이 인물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진중한 질문이 이어졌다. 관객은 이야기의 경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서는지, 또 ‘생각’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고 듣는 이의 세계로 흘러드는지 그 답을 찾으려 애썼다.
이에 김신록은 예술이 던지는 무용한 듯 보이는 질문의 가치에 대해 “삶에 아무 쓸모도 없을 것 같은 질문이 떠오르면 예술 작품 앞에 설 때가 많다”고 전했다. 최근 이훤 작가의 사진전 ‘공중 뿌리’를 찾으며, 한 장의 사진 속 벽 아래에 붙은 사물에서 오랜 시간 시선을 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묵직한 생각의 길 위에 선 김신록의 오늘, 그리고 그녀의 깊은 사유가 담긴 무대 ‘Endless’는 예술과 관객, 배우와 인물 사이의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김신록이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의 여운은 여름의 마지막을 닮은 고요함 속에서 한 장면처럼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