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결단에 달러 울고 원화 웃다”…미국 관세 협상 연기 효과 아시아 통화 급변→연말 환율 향방 촉각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도시, 서울의 외환 시장은 여느 날보다 깊은 여운을 남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에 내놓았던 50퍼센트 관세의 그림자를 잠시 뒤로 미루자, 세계는 숨을 고르며 각국 통화의 흐름을 지켜보았다. 시장에는 변동의 바람이 불었고, 달러화는 다소 힘을 잃은 채 주요 통화 앞에 고개를 숙였다.
지난 26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달러인덱스는 한때 98.694까지 내려앉으며 올해 초 이래 처음으로 99선 아래로 미끄러졌다. 이날 오후 3시 35분, 달러인덱스는 전일보다 0.334 내린 98.778을 기록했으며, 달러 현물 인덱스 역시 2023년 말 이후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물렀다. 이변을 부른 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연기 선언이었다. 협상에서 진통을 겪던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7월 1일로 예정됐던 EU 대상 50퍼센트 관세를, 7월 9일로 연장하겠다고 돌연 밝힌 셈이다.

그 배경에는 대외 관세 정책에서 비롯된 불확실성,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대한 우려, 연쇄적인 감세 법안 추진과 재정 적자 확대 가능성이 어우러져 있었다. 오랜 고리를 잇던 신뢰에 흠집이 생기자, 시장은 가격에 그 불안을 담아냈다.
거래 시간의 정적을 깬 건 각국 통화의 예민한 움직임이었다. 원화의 강세가 눈에 띄었고, 엔화와 위안화, 대만달러, 필리핀페소 역시 자리 이동을 보였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주간 기준 1,364.4원으로 전일보다 11.2원이나 낮아졌다. 대만달러/달러 환율은 29.920대만달러대로 이달 초 급등 이후 저점을 찍었고, 필리핀페소/달러 환율 역시 2023년 8월 초 이후 가장 낮게 내려앉았다. 역내위안/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0.0080위안 내린 7.1729위안, 반면 엔/달러 환율은 소폭 높은 142.73엔에 달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증권은 원/달러 환율이 올해 말 1,320원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보며, 원화가 달러 대비 아시아 통화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상승률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iM증권 역시 연말 1,350원 전망을 제시했다. 한편, 일본의 닛케이225지수와 한국의 코스피는 각각 1.00퍼센트, 2.02퍼센트 상승해 아시아 증시의 온도를 조금씩 높였다. 그 반면, 대만, 중국, 홍콩 증시는 하락세로 서늘한 기류가 감돌았다.
미국 증시는 메모리얼데이로 인해 문을 닫았으나, S&P500과 나스닥100 선물은 한국 시각 오후 3시 35분 기준 오름세를 보였다. 바야흐로 시장은 미·EU 간 관세 협상 과정, 미국 재정정책이라는 미답의 길목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지정학적 갈림길마다 환율은 긴장과 품격을 오가는 파동을 남긴다. 미국의 정책 변화와 국제 통화 시장의 물결은, 그 자체로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세계는 이 미세한 진동 위에서 저마다 답을 찾아가고 있다. 시장의 파동 속에 원화의 길은 어디로 흘러갈지, 또 한 번 기다림의 계절이 시작됐음을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