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해안과 붉은 노을”…고흥에서 만나는 고요한 일상, 새로운 여행의 의미
여행의 기준이 달라졌다. ‘어디로 갈까’를 묻기보다, ‘어떻게 머무느냐’를 고민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사람들은 오늘도 도시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조용한 남해 끝자락 고흥에서 흩어진 한숨을 내쉰다. 흐린 날씨마저도 이곳에서는 풍경이 돼, 여행은 잠시 멀리 있던 나를 돌아보는 일이 된다.
요즘 고흥을 향하는 이들은 자연과 전통, 그리고 자신과의 대화를 찾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굽이치는 길을 달리면 문득 펼쳐지는 잔잔한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이 여행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두원면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서는 조용한 전시실의 온도와 분청사기 특유의 빛깔 속에 손끝으로 전해지는 전통의 무게를 만끽할 수 있다. 도자기를 직접 빚고 구워보는 체험 활동에선, 사소한 흙의 감촉마저도 새로운 여행의 추억이 된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보인다. 여행이 단순 휴식이나 볼거리 소비를 넘어, 로컬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겠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서도 올해 ‘지역 문화 탐방’형 개별 여행이 20% 이상 증가한 사실이 확인된다. 특히 고흥은 분청사기, 산사, 일몰 명소 등 전통과 자연을 두루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 많은 선택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머무르는 여행’이라 표현한다. 여행 칼럼니스트 유은경 씨는 “고흥 같은 지역에선 걷고, 배우고, 사색하는 모든 과정이 여행의 일부가 된다”며 “빠르게 즐기기보다 천천히 머무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힐링”이라고 느꼈다.
실제로 능가사를 찾은 방문객들의 반응도 따뜻하다. 조용한 산사 마당에 서서 신발 끈을 만지작거리는 40대 직장인 윤 모 씨는 “바람이 불거나 새가 우는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SNS에는 “해 질 녘 중산일몰전망대의 하늘은 사진보다 실제가 훨씬 찬란하다”, “고흥 박물관에서 한나절 머물고 나니 내 안의 불안까지 가라앉는 기분” 같은 공감의 기록들이 이어진다.
고흥의 일몰 전망대에선 붉게 타는 하늘 아래 바다와 섬이 스며든 풍경이 지친 마음을 달랜다. 자연스럽게 일행과의 대화도 줄고,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고흥의 자연과 문화 속에서 천천히 걷는 이 계절의 여행은, 지금 이 변화가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