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에 UAE 위성 탑재도 추진”…우주청, 발사장 협력으로 K우주 확장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와의 우주 협력을 발사장 인프라와 발사서비스까지 확장하며 우주 수송과 탐사 분야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우주과학 연구부터 달과 화성 탐사, 인공위성 공동 개발, 위성항법 지상국 구축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고, 누리호를 활용한 위성 탑재 발사와 UAE 내 발사장 구축까지 논의하면서 국내 우주기업의 해외 진출 통로가 열릴지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정이 한국 우주항공청 출범 이후 첫 대형 양자 협력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우주항공청은 18일 한UAE 정상회담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 우주청과 우주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개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국 측에서는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UAE 측에서는 아흐메드 벨훌 우주청 이사장이 아부다비에서 양국 대통령 임석 하에 개정 문건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절차를 마쳤다. 양국은 2017년 우주탐사와 이용 협력을 위한 첫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2023년에는 한국 측 당사자를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변경한 바 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한국 측 협력 주체를 우주 전담 기관인 우주항공청으로 공식 전환한 점과 함께, 양해각서 내용을 프로젝트 중심으로 구체화했다는 데 있다. 기존의 포괄적 협력 선언에서 한 걸음 나아가, 공동 탐사, 위성 개발, 발사 인프라 구축 등 실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항목을 세부적으로 적시해 실행력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정 양해각서에 따라 양국은 우주과학 연구, 인력 개발, 지구 관측 등 기존 협력 축을 유지하면서 달과 화성 탐사 경험 및 기술 공유, 위성 공동 개발과 공동 활용, 위성항법 지상국 협력, 발사장 인프라 구축 협력 등을 새롭게 포함했다. 특히 발사장과 발사서비스를 공식 의제로 올리면서 우주 수송 분야까지 협력을 확장한 점이 눈에 띈다.
우주탐사 영역에서는 한국의 달 탐사선 다누리와 UAE의 화성 탐사선 아말의 개발 및 운용 경험을 서로 공유하기로 했다. 두 탐사선 모두 원격탐사 장비를 활용해 천체의 표면과 대기, 환경 데이터를 수집해 온 만큼, 임무 설계, 궤적 제어, 원격 운영 소프트웨어, 심우주 통신 기술 등에서 협력 여지가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심우주 탐사 역량을 축적 중인 한국 입장에서는 화성 궤도선 운용 경험을 보유한 UAE와의 협력이 기술 성숙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성 개발 분야에서는 한UAE 민간 기업 간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양국이 보유하거나 새로 발사하는 위성에서 촬영한 지구 관측 영상을 상호 공유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지구 관측 위성 영상은 농업, 국토 관리, 에너지 인프라 모니터링, 재난 대응 등 다목적 활용이 가능한 데이터 자산으로, 양국이 관측 궤도와 센서 구성을 분담하면 관측 주기와 해상도를 보완할 수 있다.
위성항법 협력도 새롭게 담겼다. 한국이 개발 중인 한국형 위성항법 시스템 KPS의 운영을 지원하는 지상 감시국 가운데 하나를 UAE에 구축하는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위성항법 지상국은 위성 궤도와 신호 품질을 모니터링하고 오류를 보정해 정확한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핵심 인프라로, 저위도 지역인 중동에 감시국을 확보하면 KPS 서비스의 글로벌 커버리지와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동시에 UAE는 향후 자체 항법 서비스 도입이나 타 시스템과의 연동에 필요한 기술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발사장과 발사서비스 분야에서는 국내 기업이 UAE에 발사장 구축을 추진할 때 우주항공청이 정책적·기술적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아울러 한국이 독자 개발한 발사체 누리호에 UAE가 개발한 위성을 탑재해 쏘아 올리는 방안도 공식 협의 대상에 올렸다. 누리호는 중대형 실용위성 발사 능력을 보유한 만큼, 중동 지역 위성 수요를 수용하는 상업 발사 서비스로 확장될 여지가 있다. UAE 입장에서는 발사 옵션을 다변화해 비용과 일정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된다.
한UAE 우주 협력은 2006년부터 위성 개발과 인력 양성 중심으로 축적돼 왔다. 국내 위성 개발 전문기업 쎄트랙아이는 UAE 전문인력과 함께 두바이샛 1호와 2호 위성을 공동 개발했으며, 한국과학기술원은 위성 시스템 설계와 운영을 포함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UAE의 독자 위성 개발 역량 확보를 도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UAE가 개발한 위성에 대해 우주환경 시험을 수행하며 품질 검증을 지원했다.
이 과정은 한국의 우주 개발 초기와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이 1989년 KAIST 학생들을 영국 서리 대학에 유학 보내 우리별 1호를 개발했던 것처럼, UAE는 쎄트랙아이와 KAIST에 연구원들을 파견해 체계적인 기술 이전을 받았다. 이렇게 양성된 UAE 인력은 현재 모하마드 빈 라시드 우주센터에서 활동하며 양국 기술 교류의 안정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우주 수송 분야에서도 협력이 가속 중이다. 2024년 국내 발사체 업체 이노스페이스는 UAE 우주청과 발사장 건설과 발사 서비스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고체 및 하이브리드 발사체를 개발 중인 국내 민간 기업이 중동에 발사 인프라를 구축하면, 저궤도 위성 발사 수요를 겨냥한 상업 서비스 모델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인공위성 개발에서 시작된 양국의 협력 축이 발사체 운용과 서비스로 이어지면서 우주 산업 밸류체인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우주항공청은 이번 한UAE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교류와 협력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제도 기반이 정비된 만큼 민간기업과 연구기관, 대학이 참여하는 다층적 협력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특히 양해각서 개정에 따른 후속 조치로 내년 상반기 민관사절단을 UAE에 파견할 예정이다.
민관사절단은 국내 산학연을 대상으로 UAE 진출 수요를 조사한 뒤, 위성 개발, 발사 서비스, 지상국 구축, 데이터 활용, 교육 프로그램 등 분야별 관심 기관들로 꾸려진다. 이후 구체적인 일정과 방문 방식은 양국 우주청 간 협의를 통해 조율된다. 한국 우주 생태계 전반을 소개하고, UAE 측 수요와 매칭하는 형태의 파트너 발굴 프로그램이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전략적 파트너와의 양자 협력을 통해 우주항법, 심우주 탐사, 상업 발사 서비스 등에서 국제 레퍼런스를 확보하면 향후 다른 중동 및 신흥국 시장으로의 확장도 가능하다고 본다. 동시에 발사장 건설과 위성 데이터 공유에는 국가 안보와 기술 주권 이슈가 얽혀 있어, 협력을 추진하되 정보 보호와 기술 통제 원칙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주항공청이 앞으로 어떤 속도와 범위로 협력을 구체화할지에 따라 한국 우주 산업의 해외 진출 궤적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산업계는 이번 합의를 기반으로 한 실제 사업화 성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