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3승 달성”…이민지, 빗자루 퍼터로 부활→KPMG 여자 PGA 우승
승부의 무게에 눌린 그린 위, 이민지는 묵직한 평정심으로 샷을 이어갔다. 버디를 잡은 후 어깨에 스미는 환호와 함께 이번 우승에는 치열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20개월간의 기다림과 변화, 그리고 결실이 아름다운 미소 속에서 꽃피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는 텍사스주 프리스코의 필즈랜치 이스트 코스에서 열렸다. 이민지는 이날 2오버파 74타로 경기를 마치며, 최종 합계 4언더파 284타를 기록해 우승자의 자리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3타 차이로 태국의 짠네티 완나센과 미국 교포 오스틴 김을 따돌리며 통산 11승을 완성했다.

이로써 2023년 10월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이후 약 20개월 만에 이룬 쾌거였다. 더욱이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2021년)과 US여자오픈(2022년)에 이어 메이저 대회 세 번째 정상을 밟게 됐다. 호주 선수 가운데 메이저 3승 이상을 거둔 이는 카리 웹, 젠 스티븐슨에 이어 이민지가 세 번째다.
우승 상금 180만달러는 단숨에 시즌 상금 랭킹 1위까지 이끌었다. 지난해 상금 랭킹 43위에 그쳤던 아쉬움도 털어냈다. 살아 있는 전설로 거듭난 이민지는 자신만의 루틴과 절제된 멘탈로 이번 무대를 지배했다.
무엇보다 관심을 모은 것은 이번 시즌 도입된 '빗자루 퍼터'였다. 퍼팅 난조와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새롭게 들인 브룸스틱 퍼터가 이번 메이저 정상에 오르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후반 14, 15번 홀 연속 버디로 점수 차를 벌리며, 마지막 골프장의 바람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겼다.
경기가 끝난 뒤 이민지는 “오늘은 나 자신을 뛰어넘는 경기였다. 리더보드를 자주 확인하며 샷 하나하나 집중을 거듭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퍼터에 대한 질문에는 환한 미소로 “지금 상황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승리의 순간이 묻어난 표정이 컵 위에서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한국 선수들의 성적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혜진은 버디 2개, 보기 4개로 최종 3오버파 291타, 이소미 역시 이븐파 72타를 기록하며 두 선수 모두 공동 8위를 차지했다. 두 사람 모두 올 시즌 메이저 대회 3연속 톱10이라는 꾸준한 강세를 뽐냈다.
경기 뒤편에서 이어진 박수와 환호, 그리고 잔잔한 축하의 손길은 선수들의 헌신과 기다림 위에서 더욱 빛났다. 다음 메이저 일정은 8월 AIG 여자오픈이다. 이민지는 AIG 여자오픈이나 내년 셰브론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경우,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쓸 수 있게 된다. 땀과 인내, 새로움을 안고 메이저 역사의 한 켠을 다시 쓰고 있는 이민지의 행보, 그리고 한국 선수들의 다음 도전 역시 깊은 관심을 모은다.
하루를 견디듯 쌓아온 샷, 빗자루 퍼터 끝에 스며든 희망, 그리고 잔잔한 여운이 그린 위에 남았다.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의 결말은 6월 23일 아침, 수많은 팬들의 마음에도 묵직한 울림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