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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눈물 춤, 박찬욱 웃음…경계의 농담”→유만수의 절박함, 관객은 왜 웃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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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눈물 춤, 박찬욱 웃음…경계의 농담”→유만수의 절박함, 관객은 왜 웃는가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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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활한 미소로 시작해 농도 짙은 감정으로 물드는 인터뷰 속에서, 이병헌이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주인공 유만수의 운명과 한껏 맞닿은 진심을 꺼내 보였다. 극중에서 그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느꼈던 중년의 가장이 한순간 해고 위기에 몰려 절박하게 가정을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눈물과 웃음이 얽힌 복잡한 질감 속에서, 배우 이병헌의 매력은 전혀 의외의 색채로 번져나갔다.

 

이병헌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유머와 본인만의 색다른 감수성이 교차하는 순간을 강조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유머가 더 고급스럽다며 농담을 주고받지만, 순간마다 웃음의 결은 조금씩 다르다고 회상했다. 그렇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며 이병헌은 자신조차 재밌게 느꼈다고 말한다. 이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 이후 계속돼온 두 사람의 장단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서로 다른 유머가 맞물리며, 현장의 대화와 농담 또한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BH엔터테인먼트 제공
BH엔터테인먼트 제공

관객 각자가 웃음을 터뜨리는 포인트도 각양각색이었다. 베니스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극 중 만수가 총을 쏘기 전 얼굴을 가리는 장면에 주변이 한바탕 웃음으로 출렁였지만, 정작 촬영 당시엔 유머로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병헌의 설명이다. 그는 이 같은 반응이 박찬욱 감독에게도 신기할 수밖에 없었던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진실된 연기로 시도했기에 관객이 영화 속 절박함에서 예기치 않은 웃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이병헌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연기자로서 진정성은 끝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촬영장에서 모니터 앞에서는 실제로 웃음이 터졌지만, 감정을 다룰 때만큼은 한없이 깊고 진지했다는 이병헌. 예기치 않은 ‘슬랩스틱’ 평가에도 그는 오로지 만수의 처지로 몰입했다. 지푸라기라도 움켜잡는 심정이 그대로 동작 하나하나에 묻어났고, 제삼자의 시선에서 그 절박함이 종종 우습게 읽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쟝센과 기괴함 역시 영화의 생동감을 더한다. 이병헌은 범모의 시체를 묶는 장면이 끝없이 아름다우면서도 한없이 기이한 여운을 남긴다고 말했다. 아내 미리(손예진)와의 부부 싸움 신에 얽힌 일화도 흥미로웠다. 원래 대사였던 부분 대신, 감독의 제안으로 실제로 개 짖는 소리에 도전해 촬영한 뒷이야기, 그리고 그 장면에서 정작 관객은 별다른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영화 속 현실과 배우의 현실을 교차한다.

 

실제 부부 싸움에 대한 진솔한 고백도 이어진다. 이병헌은 현실에서는 화를 낼 때 오히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에 잠긴다고 털어놨다. 아내 이해영과의 대화처럼 직설적이지 않고, 고요한 정적 속에서 감정이 스며든다는 고백이 배우 본연의 온기를 느끼게 했다.

 

현장에서는 댄스 신까지 완전한 애드립으로 탄생했다. 5~6번을 촬영하며 주변 인물과 호흡을 맞추되, 춤 동작은 매번 달랐다. 만약 손예진이 제안한 천만 관객 코스튬 댄스 공약이 현실이 된다면 어떤 홀가분한 역동이 펼쳐질지 기대를 더한다.

 

아이러니하게도 AI 기술이 배우를 위협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실감한 경험담 역시 이병헌은 솔직하게 전했다. 유튜브에서 본 자신의 닮은 영상이 실제 본인이 아니었다는 충격, 그리고 곧바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위기감까지 녹아들었다.

 

다채로운 에피소드와 웃음, 그리고 진실된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이병헌의 목소리와 함께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상영 중이다. 이 작품은 이미 해외 선판매로 순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회수했고, 국제 영화제에서 관객상까지 받아 작품성을 입증했다. 또한 내년 3월 개최 예정인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장편 부문에 한국 대표로 나선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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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어쩔수가없다#박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