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분류로 재진단”…소아 악성 뇌종양 예후 개선 길 열린다
소아 악성 뇌종양의 진단과 치료 패러다임이 최신 세계보건기구(WHO) 분류 기준의 적용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내 연구팀이 1997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수술받은 소아 뇌종양 환자 조직을 WHO 2021년 개정진단 기준에 따라 재분류한 결과, 이전에 교모세포종이나 원시신경외배엽종양 등으로 진단됐던 환자의 절반 이상이 ‘소아 고등급 교종’(pHGG)으로 새롭게 분류됐다. 해당 질환 환자는 종양 성장 속도가 빠르고 재발률이 높아 예후가 나쁘지만, 이번 연구는 세부 아형과 유전자 돌연변이, 암소인증후군 동반 여부 등을 정밀하게 도출해 임상 의사결정에 변화를 예고했다. 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연구를 ‘분자진단 기반 맞춤형 치료 전략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78명의 환자 조직을 WHO 최신 분류에 따라 재검토한 결과, 52.6%가 소아 고등급 교종에 속했다. 구체적으로 H3 K27 변이 광범위 정중선 교종이 11명, H3 G34 변이 광범위 반구 교종 5명, H3/IDH 야생형 소아 광범위 고등급 교종 15명, 영아형 대뇌반구 교종 10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TP53 유전자 변이가 환자의 70.8%에서 확인됐고, H3/IDH 야생형 아형의 절반에서 리프라우메니증후군 등 가족성 암 질환 소인이 동반돼 유전자 검사와 가족 상담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번 연구는 최신 WHO 분류 적용이 질환별 분자생물학적 특성과 예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효과적임을 뒷받침한다. 예후 분석에 따르면, 영아형 대뇌반구 교종 아형의 생존율이 2년 92.3%, 5년 73.8%로 다른 아형에 비해 높았다. 또한 수술 전절제(총제거)를 시행한 경우 비전절제 환자보다 생존율이 유의하게 더 높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불필요한 방사선 치료는 영유아 환자에게 장기적 부작용 위험이 크므로, 진단 아형과 수술 범위에 따른 치료 강도 조정, 즉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과는 기존 진단 체계로는 소아 뇌종양 환자별 예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웠던 한계를 확인시켜준다. WHO 2021년 분류는 과거 소아 교모세포종, 원시신경외배엽종양 등의 진단명을 삭제하고 pHGG 범주를 도입했으며, 성인 뇌종양과는 생물학·유전학적으로 별개의 질환으로 다뤄야 한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분자 병리학적 진단과 유전적 위험인자 검사를 표준 진료에 도입하고 있다.
최근 소아 고등급 교종 환자에서 적용 가능한 맞춤형 치료 전략이 세계적으로 연구되는 가운데, 충분한 임상 데이터와 후속 코호트 연구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추가로 환자 유전체 분석, 생체 표적치료, 가족력 검사를 고도화하면 치료 혁신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의료계는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표준화된 분류와 분자 기반 진단이 궁극적으로는 소아 암 환자 맞춤 치료의 기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승기 서울대병원 소아신경외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국내 소아 뇌종양 환자 분자병리 진단과 예후 분석의 전환점”이라며 “개별 환자 맞춤 치료전략 및 예후 개선에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WHO 최신 분류 기반 진단이 실제 임상에 뿌리내릴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