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x이병헌, 손가락 서른 개의 연기”…블랙코미디 전율→극한 삶에 던지는 시선
익살스러운 농담 하나가 극장을 가득 메우고, 그 안엔 배우 이병헌의 깊은 눈빛과 박찬욱 감독의 예리한 시선이 녹아든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속 회사원 유만수로 분한 이병헌은 모든 것을 이룬 듯한 삶에서 뜻밖의 해고를 겪으며,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려는 절박함으로 극의 중심을 이끈다.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유연석 등 확고한 존재감의 배우들이 더해진 이 작품은 웃음과 묵직한 현실, 그리고 사랑을 한 데 엮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 감성을 선보인다.
‘어쩔 수가 없다’는 개봉 전부터 해외 선판매만으로 제작비를 모두 충당하며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제작비 170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규모 역시 영화의 치밀함과 공력을 짐작하게 한다. 작품은 세계적 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돼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국제 관객상에 이어 내년 아카데미 국제 장편 부문 한국 대표작으로까지 지명되는 영예를 안았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진이 참석한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은 축제 그 자체였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오랜 세월을 닮은 오래된 베롱 나무처럼, 각자 다른 가지에서 피어난 열정과 연기력으로 영화를 채워 넣는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신작의 연출 의도에 대해 “‘헤어질 결심’과 달리 직접적으로 말이 많은 시나리오지만, 각 캐릭터의 현실과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라며, “인위적 설명보다는 인물 간 대화와 충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의미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병헌에 대해 “고정관념이 없고, 순수하면서도 관대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무엇보다 “영화의 중반을 넘어서도 그의 다채로운 표정과 몸짓은 피아니스트가 서른 개의 손가락으로 누비는 연주처럼 풍요롭다”며, 지루함 없는 몰입의 원동력을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영화에는 미장센과 블랙코미디가 자연스럽게 얽히며, ‘모던 타임즈’ 같은 고전 영화의 유머와 현대인의 삶이 교차한다. 유만수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터지는 허탈한 웃음과 연민, 실수와 어설픔은 이 시대의 비극을 가장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무엇보다 삶의 벼랑 끝에 선 평범한 가장을 통해 관객들은 저마다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깊은 여운을 남기게 된다.
박찬욱 감독의 견고한 연출, 믿고 보는 배우들의 몰입,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절묘하게 배치된 코미디가 어우러진 ‘어쩔 수가 없다’는 오늘부터 전국 극장가에서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