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3.32% 급락 3,953.62 마감…미 연준 불확실성·AI 버블 논란에 4,000선 붕괴
18일 코스피 지수가 3% 넘게 급락하며 4,0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미국 통화정책 불확실성과 인공지능 AI 버블 논란이 다시 불붙으며 투자 심리가 위축된 영향이다. 전문가들은 기존 악재에 대한 경계 심리와 수급 부담이 겹치며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하며, 향후 미국 연방준비제도 통화정책과 AI 관련주 흐름이 국내 증시 향방을 가를 변수로 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35.63포인트 3.32퍼센트 떨어진 3,953.62에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 4,000선을 밑돈 것은 이달 7일 이후 7거래일 만이다. 지수는 장 초반 44.78포인트 1.10퍼센트 내린 4,044.47에 출발해 한때 4,072.41까지 낙폭을 줄였지만, 오후 들어 낙폭을 다시 키우며 오후 1시 22분께 3,953.26까지 밀렸다.

수급 측면에서는 기관과 외국인의 동반 매도가 지수 하락을 자극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기관은 하루 동안 6,768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가운데 금융투자가 4,287억원, 연기금이 594억원 매도 우위를 기록했다. 외국인도 5,502억원을 순매도했다. 반대로 개인은 1조2,414억원을 순매수하며 하락 과정에서 저가 매수에 나섰다.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매도세가 두드러졌다. 코스피200선물시장에서 외국인은 7,146억원 규모의 매도 우위를 나타냈고, 기관과 개인은 각각 6,255억원, 830억원 규모로 선물을 순매수했다. 현물과 선물에서 외국인의 동시 매도는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화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외환시장에서도 같은 분위기가 관측됐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오후 3시 30분 기준 달러·원 환율은 전날보다 7.3원 오른 1,465.3원에 마감했다. 안전통화인 달러 수요가 커지면서 원화가 약세를 보인 셈이다. 증시와 환율 모두에서 위험 회피 거래가 부각됐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해외 증시 약세도 국내 투자 심리를 짓눌렀다. 17일 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미국 3대 주요 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필립 제퍼슨 미국 연방준비제도 부의장이 통화정책에 대해 천천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시장에 형성돼 있던 내달 기준금리 추가 인하 기대가 약화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자 위험자산 선호가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AI 관련주 조정 우려도 투자 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 억만장자 투자자 피터 틸이 이끄는 헤지펀드 틸 매크로가 지난 분기에 엔비디아 주식 9,400만달러 약 1,375억원어치를 전량 처분한 사실이 알려지며, AI 관련주와 대형 기술주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부각됐다. 시장에서는 그간 폭등했던 AI 대표주를 둘러싸고 버블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조정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여파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 전반으로 번졌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는 3.22퍼센트 하락한 48,702.98에, 대만 가권지수는 2.52퍼센트 내린 26,756.12에 각각 마감했다. 오후 3시 42분 기준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와 선전성분지수는 각각 1.06퍼센트, 1.41퍼센트 내림세를 보였다. 홍콩 항셍지수도 2.02퍼센트 하락해 주요 아시아 증시가 동반 약세를 나타냈다.
국내에서는 최근 상승장을 주도했던 반도체와 대형 기술주가 일제히 약세로 돌아섰다. 삼성전자는 2.78퍼센트 떨어진 9만7,800원에 마감하며 이른바 10만 전자에서 후퇴했다. SK하이닉스는 5.94퍼센트 급락한 57만원에 거래를 마치며 낙폭이 두드러졌다. AI와 메모리 반도체 기대를 안고 급등했던 종목들이 되돌림 압력을 받은 셈이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도 대부분 하락 흐름에 동참했다. SK스퀘어가 6.90퍼센트 떨어졌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5.92퍼센트, LG에너지솔루션이 4.32퍼센트, 두산에너빌리티가 4.31퍼센트 내렸다. KB금융은 3.39퍼센트, 셀트리온은 3.21퍼센트, 현대차는 2.58퍼센트, 기아는 2.47퍼센트, NAVER는 2.35퍼센트 하락하는 등 주요 업종 대형주가 일제히 약세를 기록했다.
장 초반 강세를 보였던 조선주도 상승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한·미 조선 산업 협력 사업 기대감에 이른바 마스가 테마로 묶이며 강세를 보였지만, 장 후반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졌다. HD현대중공업은 보합으로 마감했고, 한화오션은 장중 상승분을 반납하고 2.37퍼센트 하락 마감했다.
업종별로는 대부분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증권 업종지수가 4.77퍼센트 떨어져 낙폭이 가장 컸다. 기계·장비가 4.53퍼센트, 전기·전자가 4.16퍼센트, 건설이 4.08퍼센트 내렸고, 의료·정밀은 3.56퍼센트, 화학은 3.43퍼센트, 금융은 3.24퍼센트, 보험은 3.14퍼센트 각각 하락했다. 그간 빠르게 오른 업종과 경기민감주를 중심으로 차익 실현성이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날 급락이 새로운 악재라기보다 기존 변수에 대한 경계 심리와 수급 요인이 맞물린 결과라고 진단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AI주 악재 재점화와 연준 위원 간 의견 대립, 11월 이후 코스피의 빈번한 주가 진폭 확대에 따른 투자자 피로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과 일본 등 그간 많이 오른 증시를 중심으로 일부 차익 실현 움직임이 나타났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 연구원은 또 새로운 악재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기존 재료가 반복 소화되는 과정에서 외국인과 기관 매도 물량이 특별히 많은 편이 아님에도 일시적으로 수급 기반이 약해지면서 급락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며, 3퍼센트대 낙폭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단기 과매도 구간에 진입했다는 인식이 형성될 경우 저가 매수 유입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해석이다.
대신증권 이경민·정해창 연구원은 시장 참여자들이 일희일비하는 가운데 다소 격한 조정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며, 11월 들어 코스피와 S&P500 지수는 각각 고점 대비 약 6퍼센트, 3.5퍼센트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증시 전반에서 성장주와 기술주를 중심으로 조정 폭이 확대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두 연구원은 특히 20일 새벽 예정된 엔비디아 실적 발표를 앞두고 AI 버블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잇따른 부정적 이슈로 인해 시장에서는 실적 발표를 지켜보려는 관망 심리가 우세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적이 기대치를 상회할 경우 AI 투자 심리가 일부 회복될 수 있지만, 눈높이에 못 미칠 경우 추가 조정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코스닥 시장도 코스피와 동반 하락했다. 코스닥 지수는 전날보다 23.97포인트 2.66퍼센트 떨어진 878.70에 마감했다. 지수는 장 시작과 함께 3.05포인트 0.34퍼센트 내린 899.62에 출발한 뒤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 폭을 키웠다. 성장주 비중이 높은 코스닥 특성상 글로벌 기술주 조정 우려가 더 크게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급을 보면 코스닥에서는 개인이 3,843억원을 순매수한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857억원, 1,185억원을 순매도했다. 개인이 하락장을 활용해 성장주 비중을 늘리는 모습이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위험 선호 축소 기조를 이어가는 양상이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종목 가운데 알테오젠과 보로노이, 리가켐바이오는 각각 2.01퍼센트, 1.30퍼센트, 0.73퍼센트 상승 마감해 선방했다. 그러나 2차전지와 바이오 관련주 중심으로 약세가 두드러졌다. 에코프로가 7.48퍼센트 하락했고, 에코프로비엠이 6.09퍼센트, 에이비엘바이오가 5.34퍼센트, 삼천당제약이 4.52퍼센트 떨어지는 등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이날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의 거래대금은 각각 14조451억원, 9조3,509억원으로 집계됐다.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의 프리마켓과 정규마켓을 합한 거래대금은 7조643억원으로 나타났다. 풍부한 거래대금 속에서 매물 부담이 한꺼번에 출회되며 지수 낙폭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경로와 엔비디아를 비롯한 주요 AI 관련주의 실적 발표가 향후 국내 증시 방향성을 좌우할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자들은 당분간 글로벌 금리와 기술주 실적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관망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