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바다 위에 걷는다”…파도 소리 따라 걷는 부산, 도시의 감성적 휴식
요즘 부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해운대에서 여름을 즐기는 계절적 여행지가 주류였다면, 지금은 흐린 날씨마저 품어내는 감성적인 산책과 도시의 결이 일상이 됐다.
부산은 늘 바다와 함께 살아간다. 9월 중순, 26.8도의 선선한 바람이 불고 흐린 구름 사이로 파도 소리가 도시 전체를 감싼다. 해운대 해변을 걷던 박지현(32) 씨는 “흐린 날이 오히려 바다의 색을 더 깊고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며 “맑을 때와 다른 고요함에 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고백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을 찾은 방문객 수는 코로나19 이전의 91%까지 회복했다. 계절에 상관없이 부산 해안 산책로와 문화마을을 찾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특히 해운대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와 8경 중 하나로 꼽히는 동백섬, 바닷가 사찰로 이름난 해동용궁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해운대의 유래 또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 신라 말 학자 최치원이 이 풍광에 감탄해 직접 ‘해운대’ 세 글자를 바위에 새겼다는 전설이 긴 시간을 거슬러 오늘에 닿는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사찰, 기장 해동용궁사에선 파도 소리가 법당 안까지 스며든다. 1376년 창건된 이 사찰에선 바닷바람을 맞으며 소원을 비는 이들로 108계단이 이어진다. 바위 절벽에 세워진 법당과 수평선 너머 펼쳐진 풍광은 보는 이마다 “도시와 자연, 신화가 한 화면에 겹쳤다”는 감상을 품게 한다.
여행 칼럼니스트 정희영 씨는 “부산 바다와 함께 걷는다는 건 단순한 휴양이 아니라, 내 일상 한가운데에서 감정의 층위를 바꿔보는 일”이라며 “걷는 리듬 사이로 파도 소리가 스며드는 경험은 이 도시만의 생활 문화를 만든다”고 느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흐린 날 부산 바다는 사진 맛이 더 난다” “혼자 걷기에 최적인 산책로, 부산만의 여유다” “흰여울문화마을 골목길에서 찍은 사진만 보면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등, 흐린 날에 더 특별한 의미를 찾는 글들이 이어진다.
실제로 흰여울문화마을에선, 절벽을 따라 늘어진 골목길과 사진작가들의 시선이 오가는 감성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레 피어난다. 오래된 가옥이 예술 공간으로 변신해 낯선 여행객 마저도 잠시 머물 수 있게 한다.
이제 부산의 해안 풍경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과 일상의 쉼표를 담는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울창한 해변 산책로, 흐린 바다 위로 부는 바람, 바다와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우리는 조금 더 천천히 흔적을 남기며 걷는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