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 지도 데이터 쟁탈” 애플·구글, 한국 공간정보 시장 주도권→정책딜레마 심화
애플과 구글, 세계 정보기술을 대표하는 양대 빅테크가 한국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다시금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IT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국내 디지털 주권과 글로벌 통상 압박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정부의 결정이 공간정보 산업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업계와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신정부 출범 이후 국외 지도 데이터 반출 이슈가 재부상하며, 산업 경쟁력 약화와 외국계 독점에 대한 우려가 산업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구글은 이미 축척 1대 5000 지도 데이터 반출 심사를 신청한 상태이며, 애플도 최근 법률 자문을 의뢰하며 공식 절차 개시에 나섰다. 이는 애플의 ‘나의 찾기’, 애플페이, 카플레이 등 첨단 서비스의 고도화를 위해 외부 고정밀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 지난해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애플의 요청을 반려한 전례가 있음에도, 양사가 지도 반출을 재차 시도하는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무역 압력과 국내 공간정보 시장의 글로벌 표준 편입 요구가 얽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4년에도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제한을 한국의 대표적 무역 장벽으로 공식 지정했으며, 정보통신산업협회(CCIA) 등 민관 연합체가 정부에 해법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 공간정보 업계에서는 구글 지도 서비스의 독점적 지위 강화와 자국 스타트업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팽팽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공간정보 기업은 6000여 개에 달하며, 99% 이상이 중소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기업이 자체적으로 데이터 구축과 서비스 혁신에 힘쓰는 반면, 구글이 정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할 경우 외국계 기업의 시장 진출이 가속화돼 국내 산업 생태계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논리다. 구글은 반대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과 서비스 개발 효율성이 제고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그간 구글이 일방적 설명에 치중했다며 보다 실질적인 소통 채널 마련을 촉구했다.
관가에서는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책 책임자 다수가 지도 반출 문제에 신중론을 견지해 왔다는 점에서, 최종 승인 여부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진 모습이다. 통상 압박과 기술 주권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지금의 정책 선택은, 단지 지도 데이터라는 기술적 문제를 넘어 미래 한국 공간정보 경쟁력과 국가 정보주권의 향배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