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무대 위 작은 방, 깊은 움직임의 서사→서울시발레단 더블빌 공연의 시간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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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 빛과 그림자가 고요히 교차하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 고요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곳에서 서울시발레단이 준비한 ‘캄머발레’와 ‘언더 더 트리즈 보이서즈’가 관객의 숨결까지 머물게 하는 두 시간의 여정을 펼친다. 네덜란드의 거장 한스 판 마넨과 유럽에서 창작의 결을 세우는 허용순의 예술이 무대를 사이에 두고 교차하는 순간, 예술은 경계를 잇고 심연을 울린다.

 

‘캄머발레’는 독일어로 ‘작은 방’이라는 장막 아래, 한정된 공간에서 무용수들은 숨 막히게 정제된 몸짓으로 대화하고, 무대 위에는 간결하지만 농밀한 감정이 스며든다. 지난해 아시아 초연 후, 다시 서울을 찾은 이 작품에는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을 거친 김지영이 등장한다. 그의 단단한 신체와 고요한 손끝에서 배어나오는 깊이는 관객의 내면에도 섬세하게 파문을 일으킨다.

출처=세종문화회관
출처=세종문화회관

허용순의 ‘언더 더 트리즈 보이서즈’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풍경을 그린다. 지난해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발레단에서 태어나, 이번 무대에서는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의 강효정이 중심을 잡는다. 이탈리아 작곡가 에치오 보소의 교향곡 2번이 선율처럼 흐르면,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음악과 밀착했고, 사유의 숲을 지난 감정들이 몸과 몸 사이에 퍼진다. 청명한 현악기 소리에 실려 발끝에서 흩어지는 그 서정은 때로는 봄의 떠오름, 때로는 가을 끝자락을 닮았다.

 

무대 뒤에서 흐르는 예술의 메시지도 깊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서울시발레단이 K-발레 허브로 세계와 소통한다는 가능성이 이번 무대에 담겼다”고 전했다. 세계를 누빈 무용수와 안무가들의 생생한 경험이 이제 한국 창작의 장 안에서 되살아나며, 예술의 순환과 성장 가능성을 비춘다.

 

정제된 동작, 감각적인 서사, 세계를 잇는 창조의 흐름이 깃든 서울시발레단의 더블빌 무대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관객을 맞는다. 이 며칠의 시간이 다 흐른 뒤에도, 작은 방의 움직임과 숲의 울림은 오랜 여운으로 가슴 깊이 남을 것이다.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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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발레단#한스판마넨#허용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