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일본, 미국과 무역합의…한국, 관세 타결 압박감 고조”
글로벌 무역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이 유럽연합과 일본 등 주요 무역 파트너 국가들과 잇따라 새 무역합의를 마무리하면서, 협상을 마치지 못한 한국이 거센 압박에 직면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유예 시한 8월 1일이 닷새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미국과의 합의 여부가 한국 수출전선의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관세율을 30%에서 15%로 대폭 인하하는 등 주요 쟁점에 대한 무역합의에 전격 합의했다. EU 측은 “15%의 관세율이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 등 대부분의 유럽산 제품에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관세 인하의 대가로 EU는 7천5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산 에너지와 군사 장비를 구매하고, 6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를 약속했다. 지난 22일 타결된 미·일 무역합의와 유사한 구조다. 일본 역시 미국산 제품 관세를 사실상 철폐하고,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미국 항공기 대량 구매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 대미 투자에 적극 나서기로 한 바 있다.
이처럼 일본과 EU가 미국에 대규모 시장 개방과 투자로 실질적인 관세율 인하를 이끌어낸 가운데, 아직 타결을 못 본 국가는 한국, 캐나다, 멕시코, 인도 등 소수로 좁혀졌다. 한국은 특히 일본·EU에 비해 불리한 조건을 우려하며, 협상 의제와 투자 규모에 대한 부담이 한층 커진 양상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요구한 4천억 달러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대기업의 1천억 달러+α(알파) 수준 대미 투자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과 EU의 투자액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아, 미국의 수용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관측도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협상 막판까지 총력전에 돌입했다. 31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워싱턴DC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마지막 담판에 돌입한다. 조현 외교부 장관 역시 같은 시기 미국을 방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한미 무역협상 지원에 나선다. 이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주 미국 현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과 추가 협상을 마치고, 뉴욕 현지 러트닉 장관 자택 방문 및 화상회의 등 전방위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 중인 미 행정부 주요 인사들과의 추가 교섭 가능성도 제기된다. 치열한 협상 전선 속에, 한국 정부와 재계가 부진한 합의 시장 개방 조건과 관세율 협상에서 일본·EU 수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날 여야는 "한국이 이번 시한 내 미국과의 합의에 실패할 경우 자동차 등 핵심 수출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산업계는 "한미 협상이 불리하게 귀결된다면 수출경쟁력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막판 협상에 대한 압박과 낙관·비관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여당은 "투자 확대와 협상력을 동원해 일본·EU의 합의 수준을 견인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야당은 "졸속 합의의 부작용이나 과도한 투자 부담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향후 최종 담판 결과에 따라 한국의 대미 수출환경과 글로벌 무역지형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31일까지 미국 협상팀과 접촉을 이어가,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막판 조율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