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사용료 철폐 논란 재점화”…美-EU 정면 충돌에 한국 정책 변수 부상
망 사용료(Network usage fee) 부과 이슈가 전 세계 ICT 산업의 주요 쟁점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최근 미국 백악관은 유럽연합(EU)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대한 망 사용료 부과 계획을 철회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디지털 무역장벽’ 논란을 재점화했다. 반면, EU는 즉각 이를 부인하며 자국 입법 주권을 강조하고 나섰다. 업계는 이번 미-EU 간 논쟁이 한국 등 주요국의 통상 정책 및 ICT 산업 규제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백악관은 29일(현지시각) 발표한 무역 협정 관련 공식 자료에서 “양측은 부당한 디지털 무역장벽 해소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며, 특히 “EU는 네트워크 사용료 도입 또는 유지하지 않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사실상 망 사용료 부과 규제에 대한 철회 의사를 강조한 대목이다. EU는 최근 ‘디지털 네트워크법(DNA)’ 초안에서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게 망 사용료를 부담하도록 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었던 만큼, 업계에서는 DNA에서 해당 조항이 제외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망 사용료 여부는 내부 입법 절차에 따라 판단될 사안으로, 미국과의 정치적 합의가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전문가들은 양측이 각자의 통상 전략에 맞춰 자의적으로 협상 결과를 해석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망 사용료 논쟁은 한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3건의 관련 입법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미국과의 무역 협상 테이블에서도 이슈가 핵심 의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미국, 유튜브·넷플릭스·메타 등 자국 기반 글로벌 CP에 국내 망 사용료 부담이 발생하는 법안 및 규제를 일관되게 ‘디지털 장벽’으로 간주하고 지속적인 철회를 요구해왔다. 실제로 미 정부는 통상 협상 과정에서 망 사용료 철회를 관세 인하나 수출입 혜택 등과 연계해 밀어붙이는 전략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앞서 EU와의 협상에서도 동일한 주장이 반복된만큼, 한국 역시 강도 높은 압박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SK브로드밴드·KT·LG유플러스 등 통신사와 유튜브·넷플릭스 등 해외 CP 사이에서 망 투자 비용 분담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꾸준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국내 인터넷 트래픽의 31.2%는 구글, 4.9%는 넷플릭스, 4.3%는 메타 등 해외 CP가 점유했으며, 국내 CP 중에서는 네이버가 4.9%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통신사 측은 “트래픽 부담 폭증에 대한 합리적 분담”을 주장하는 반면, CP 측은 “이용자가 이미 요금을 내고 있어 이중 부과”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최근에는 유튜버를 통한 여론전까지 벌어지며 사회적 논쟁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국회에 발의된 ‘망 이용계약 공정화법’ 등 관련 법안의 처리가 통상 마찰 우려로 장기간 표류하는 가운데, 정부는 “글로벌 논의 흐름을 지켜보겠다”는 신중 모드를 고수하고 있다. 김지원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망 이용대가 문제는 협상력 차이뿐만 아니라 국제 논의 동향이 중요한 변수”라며 “전 세계적 논의 결과를 참고해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무역협상 전개에 따라 망 사용료 입법 및 정책 방향도 실시간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만일 미국이 관세 면제 등 실질적 이득을 망 사용료 법안 철회와 연계해 요구할 경우, 가뜩이나 통과가 어려운 국내 입법 논의가 한층 더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 무역 규범 논쟁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정부가 언제까지 관망 전략을 선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산업계는 이번 망 사용료 이슈가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