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 추진, 정상 간 확고한 의지"…강경화, 한미동맹 새 출발선 자평
정책 기조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 가능성과 북핵 위협 대응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외교 라인의 역할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정상 상호방문을 뒷받침한 강경화 주미대사는 한미동맹의 새 출발선을 자평하며 대북정책 공조와 방위 협력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강경화 주미대사는 18일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문화원에서 한국 특파원단과 간담회를 열고 미국 조야와의 대북 외교 구상, 최근 한미정상회담 성과, 방위비 분담금 논의 상황 등을 설명했다. 강 대사는 먼저 "미국 측과 긴밀히 소통하는 가운데 우리의 대북 정책에 대한 지지를 계속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하며 한미 간 대북 공조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강 대사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한미가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소통의 필요성과 한반도 안정의 중요성에 공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미 양국은 2차례의 정상 간 만남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긴밀한 공조에 합의하고 대북 소통이 긴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정부는 미국과 함께 피스메이커와 페이스메이커로서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의 여건이 성숙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 대사는 특히 지난달 말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계기 방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회동 가능성이 거론됐다가 무산된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주미대사관이 미국 의회와 조야를 상대로 북미 대화 추진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북한 동향과 북미 접촉과 관련해서는 "한미 간 사전 협의 원칙 아래 국무부 등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지난 10월 초 부임한 뒤 처음으로 특파원단과 마주한 강 대사는 한미동맹 현주소에 대한 평가도 내놨다. 그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많은 어려운 도전 과제와 불확실성을 마주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이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실천해나가기 위해서는 굳건하고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현지 대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약 5개월 만에 이뤄진 지난 10월 말 한미 정상 상호방문에 대해선 "정상 간 상호방문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그 결과 한미 간 무역·통상 및 안보 협의가 전격 타결되면서 우리는 한미동맹의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강 대사는 두 차례 한미정상회담에 모두 동석한 경험을 언급하며 "제가 목격한 양국 정상 간 돈독한 신뢰와 강력한 협력 의지는 계속되는 한미 관계 발전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미 외교의 최전선에서 힘들게 일궈낸 성과가 차질 없이 이행되도록 대사관의 각 부서 모든 직원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강 대사는 최근 발표된 한미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 담긴 핵심 성과를 구체적으로 짚었다. 통상·무역 분야에서는 품목 관세 인하에 연계된 대미 투자 패키지 구성을 통해 양국 간 무역 확대 기반을 조성한 점을 들었다. 안보 분야에서는 핵추진 잠수함 건조 협력, 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 한국 국방력 강화 및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미국의 지지 확보, 미 군함의 국내 건조 가능성을 포함한 조선 협력 토대 마련 등을 나열하며 "전례없는 굵직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 정상 간 의지가 특히 강하게 확인된 사안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대사관 설명에 따르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에서 명시적으로 논의됐고, 두 정상이 확고한 추진 의지를 드러낸 분야로 지목됐다. 트럼프 행정부 내 일부 실무 부처의 이견과 절차적 쟁점이 존재하지만, 강 대사 측은 "정상 차원의 의지가 분명한 만큼 향후 절차가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자리에서 핵추진 잠수함 관련 사안에 관해 이재명 대통령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관심이 미국 내 정치·군사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핵잠 협력이 향후 한미 안보 어젠다의 핵심 축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단서라는 해석도 나온다.
조선 분야 협력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권한 활용 가능성이 언급됐다. 강 대사 측 설명에 따르면 한미 조선 협력은 민간 선박 건조를 넘어 미국 해군 군함의 한국 건조 방안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다만 미 해군 함정의 해외 건조는 미국 의회의 입법 절차를 수반하는 만큼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 등 행정부 권한을 적극 활용해 현실적 방안을 우선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워싱턴에서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관심을 모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와 주한미군 주둔 규모 조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구체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 대사 설명에 따르면 한미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재임 당시 도출된 방위비 분담금 합의, 특히 2026년 이후 적용분을 변경하지 않고 유지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실제 지난 14일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는 "가능한 한 조속히 한국의 법적 요건에 부합하게 한국의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의 3.5퍼센트로 증액한다"는 문구와 함께 "한국의 법적 요건에 부합하게 주한미군을 위한 330억 달러 상당의 포괄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기존 방위비 분담금 합의 자체를 재협상하는 문구는 담기지 않았다.
앞서 윤석열 정부 시절인 지난해 합의된 방위비 분담금에 따르면 한국의 내년 방위비 분담금은 1조5천192억 원으로 책정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국면에서 여러 차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충분히 보전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 정부 시기 합의를 수정하려 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현재로선 관련 사안이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라는 평가가 대사관 안팎에서 나온다.
한미 관계를 둘러싼 미 행정부 내 이견과 미 의회의 변수에도 불구하고, 문서화된 합의와 정상 차원의 의지는 양국 협력의 중요한 안전장치로 기능할 전망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제시된 강 대사의 발언과 설명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 정부와 주미대사관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대화 재개, 핵추진 잠수함 등 전략자산 협력, 방위비 분담체계 유지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대미 외교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외교가는 향후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담과 추가 정상 간 소통에서 관련 사안이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