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양자컴퓨팅으로 분자 접힘 예측”…글로벌 제약, 신약개발 속도전

김다영 기자
입력

양자컴퓨팅 기술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신약개발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막대한 양의 의료·화학 데이터를 처리하고, 인체 내 분자의 실제 환경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을 빠르고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 특히 복잡한 단백질 구조 분석과 약물-표적 결합력 예측, 신약 후보물질 선별 등 기존에 10~15년 소요되던 신약개발 전주기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데 산업적 파급력이 주목된다. 업계는 양자컴퓨팅이 신약개발 경쟁의 핵심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근본 원리는 기존 이진법 트랜지스터와 달리, 큐비트(qubit)의 중첩·얽힘 현상을 계산에 적용한다는 데 있다. 이를 토대로 분자 간 전자 분포, 원자 배열 등 매크로·마이크로 스케일의 복잡한 상호작용까지 재현·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단백질 3차원 공간 구조 예측, 표적 단백질 활성 부위 파악, 약물 결합 에너지 산출 등은 전통 슈퍼컴퓨터 대비 수십~수백 배의 처리 속도와 예측 정밀도를 보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양자컴퓨팅 기반 신약개발 시장은 2024년 4억5000만 달러(약 6263억원)에서 2030년 8억1000만 달러(약 1조1273억원)로 연평균 12.2% 성장세가 예상된다. 실제로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은 2021년 구글 퀀텀 AI와 파트너십을 맺고 컴퓨터 지원 약물 설계(CADD)와 인 실리코 연구를 실전화했다. 이 과정에서 약물-단백질 결합력을 기존 방식보다 높은 정확도로 예측해 효율적 후보 선정에 성공했다. 로슈는 영국 케임브리지 양자컴퓨팅과 알츠하이머 신약 개발을, 아스트라제네카는 아이온큐·아마존웹서비스·엔비디아와 화학반응 분석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국내에서도 인세리브로, 리가켐 바이오사이언스 등 신생 기업이 양자역학 기반 AI 신약개발 플랫폼, 양자컴퓨팅 기반 분자 구조 예측 등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인세리브로는 양자물리학적 상호작용 예측을 내세운 ‘마인드’ 플랫폼, 리가켐은 연세대학교와 ADC 신약개발에 양자컴퓨팅 공동연구로 참여했다. 이는 한국 바이오 분야의 기술경쟁력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다.

 

반면 양자컴퓨터의 상용화와 의료 데이터 응용에는 여전히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큐비트의 오류율, 소프트웨어 호환성, 컴퓨터 지원 약물 설계 데이터에 대한 규제 등도 해결 과제로 꼽힌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임상시험 설계 단계에서 양자컴퓨팅 데이터를 첨부할 경우, 식약청(FDA·EMEA) 등 규제기관의 기준이 점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팅이 신약개발의 게임체인저로 자리 잡을지 여부는 실제 임상 적용과 데이터 신뢰도에 달렸다”고 진단한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김다영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양자컴퓨팅#베링거인겔하임#인세리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