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마나가하섬부터 그로토까지”…사이판에서 완성하는 휴양의 온도
요즘 사이판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한때 신혼부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에메랄드빛 남태평양의 섬은 이제 누구에게나 열린 쉼의 일상이 됐다. 기능적인 휴식이 아니라, 감각의 계절을 만끽하고 싶다는 여행자들이 하얗게 펼쳐진 백사장과 맑은 바다를 마주한다.
사이판 여행에서 가장 먼저 이름 오르는 곳은 서쪽의 마나가하섬이다. 배를 타고 15분, 발아래로 드러나는 속이 훤한 바다가 손짓한다. 스노클링과 다이빙, 바람을 가르는 패러세일링까지 물 위의 시간은 늘 모자란 듯 흘러간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이곳이 사이판에서 손꼽히는 ‘필수 코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북부의 명소 그로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동굴 안쪽까지 스며드는 햇살에 물빛은 눈으로만 담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롭게 빛난다.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라는 평판이 괜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마리아나관광청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꾸준히 증가한 사이판 방문객 중 30~40대 여행자 비중이 뚜렷이 높아졌다. SNS에는 ‘완벽한 바다’, ‘내 인생의 푸르름’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현지 인증샷이 쏟아지고 있다. 단순한 놀이나 휴식이 아니라, 일상을 잠시 멈추고 싶은 마음, 낯선 곳에서 새로운 감각을 얻고 싶은 욕구가 모여 만들어진 풍경이다.
여행 전문가 박지연은 “사이판의 매력은 단지 예쁜 바다만이 아니에요. 걷고, 머물며, 주변을 바라보는 슬로우 트래블의 진짜 의미를 경험할 수 있죠. 특히 해식동굴 그로토처럼 자연과 자신이 하나 되는 느낌을 주는 장소가 많아요”라고 느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의 목적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만세절벽처럼 역사적 의미가 깃든 장소는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80미터 절벽 위에 서면 한때 비극의 역사가 고요한 바다와 한데 어우러진다. 여행자 이태림(36)은 “낮에는 아름답고, 해질 무렵에는 왠지 모를 숙연함이 밀려온다. 슬픈 기억이지만 자연이 다독여주는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버드 아일랜드의 전망대와 거북 바위, 그리고 경비행기로 금세 닿는 티니안 섬도 사랑받는 곳이다. 사이판보다 더 조용한 티니안의 타가비치에 서면, 어둑하게 저무는 섬의 하루가 마음까지 물들인다. 여행 후기를 돌아보면 “여운이 길게 남았다”, “시간이 느려지는 경험”이라는 반응이 잦다. 나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 섬 여행의 감도 역시 다양해졌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때의 마음은 지금도 나와 함께 걷고 있다. 사이판의 바다와 햇살, 남겨진 감정이 작은 습관처럼 일상에 스며든다. 에메랄드빛을 찾아 떠났지만, 돌아온 건 쉼의 태도 그 자체였는지 모른다. 작고 사소한 여행이 우리 삶의 방향을 천천히 바꾼다.